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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Sep 26. 2015

'어떻게 끝냈느냐'가 중요한 이유

● 인용문


심리학자인 다니엘 캐너만 교수는 심리학자면서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인간의 행동과 의사결정이 결코 고전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이성적 인간'처럼 산술적인 이해관계와 기계적 합리성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행동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경험자아(experiencing self)'와 '기억자아(remembering self)'라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존재가 공존하고 있다.


'경험자아'는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을 느끼는 자아다. 이 자아는 지금 벌어지는 기쁜 일이나 쾌락을 즐기고 반대로 고통이나 괴로움을 피하려고 한다.


한편 '기억자아'는 지나간 경험을 회상하고 평가하는 자아다. 그러한 '회상'은 이야기하기(story-telling)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두 자아의 판단은 대체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캐너만 교수 이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과 그에 따른 의사결정(예컨대 지금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은 전적으로 기억자아에 의존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기억자아다.


캐너만 교수는 이 사실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은 환자의 경험과 기억에 대한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냈다. 캐너만 교수팀은 대장내시경을 받는 환자를 임의의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A그룹 환자들은 평소대로 대장내시경 검사가 끝나자마자 내시경을 제거하게 했다.

그런데 B그룹 환자들은 대장내시경 검사가 다 끝난 후에도 내시경을 즉시 제거하지 않고 한동안 놔두었다가 제거했다.


A환자 그룹은 8분간 고통스로운 검사를 받았고, 그 고통의 순간은 급작스럽게 끝났다.

반면에 B환자 그룹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긴 24분간이나 검사를 받았고 A환자 그룹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도 겪었다.

두 그룹에 있어서 '경험하는 자아'는 B그룹의 경우 훨씬 더 큰 고통을 받았다.

A그룹이 검사를 다 마치고 편안히 쉬는 동안 B그룹은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아'의 평가는 완전히 달랐다.

검사가 다 끝나고 1시간이 지난 후에 고통의 정도와 또 다시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놀랍게도 B그룹이 검사를 훨씬 덜 고통스럽게 기억하면서, 재검사에 대한 의향의 비율도 B그룹이 훨씬 높았다.


이는 A그룹의 경우 검사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끝났기 때문에 계속 고통스럽게 '기억'하는 반면, B그룹의 경우에는 고통이 점차 감소하다가 줄어들면서 끝났기 때문에 훨씬 덜 고통스럽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의사는 환자의 '덜 고통스러운 기억과 '행복'을 위해 내시경을 한동안 놔두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검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내시경을 제거하는 것이 옳은가. 어느 쪽이 더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선택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회복탄력성은 바로 이 '기억하는 자아'의 문제다. 기억자아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텔링를 하는 자아다. 이 기억자아가 자신의 고난과 역경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 바로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회복탄력성, 김주환, 39~41면 - 




● 생각


1. 얼마전 이혼 부부를 대상으로 전문적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의사선생님과 말씀을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차피 이혼이라는 결론에 이르더라도, 이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재혼의 성공율이 달라지더군요.

'당신과 내가 더 이상 같이 살기는 힘들다, 그 점은 서로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는 나는 이런 잘못이 있었고, 당신은 이런 점이 아쉬웠구나.'라는 식으로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진단을 내린 사람들은 재혼을 하더라도 다시 이혼할 확률이 훨씬 낮아집니다.

하지만 화가 나서 이혼을 하고 다시 재혼을 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혼할 확률이 높습니다.

재혼은 분명 초혼보다 훨씬 '상대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더 신중할 것'이고, '이미 한 번의 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교육효과'도 있을텐데, 재혼의 이혼 확률이 초혼의 이혼확률보다 높은 것은 바로 이처럼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2.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탄력성' 중에서 인용한 위 구절과 위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묘하게 오버랩됐습니다.


사람은 특정한 상황을 '어떻게 끝냈느냐'가 그 사람의 다음 선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설령 고통스런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라도 그것을 잘 마무리 한다면(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을 갖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내는 경우를 의미)

캐너만 교수의 설명에 따른다면 '경험자아' 자체는 상처를 입었을 테지만 '긍정적인 기억자아'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다음 선택과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긍정적이고 발전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지금 힘든 과정을 겪고 계시는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 당장 이 힘든 과정이 싸그리 사라져 버릴 것을 기대하기 보다는, 

다소 힘들더라도 시간을 두고 이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갈무리하고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여러분은 '긍정적인 기억자아'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 긍정적인 기억자아의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이 여러분이 살아감에 있어 또 다른 원동력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 Check Point


□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과 낭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그 속에서 앞으로 내 삶의 자양분이 될 교훈이 무엇인지 추출해 내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서 '잘못된 기억자아'를 갖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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