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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Sep 29. 2015

자수하여 광명찾자!

금융기관 임직원이 리베이트 받은 경우

# 1

친구인 문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밤 10시 반.

오랜만의 전화라 반갑기도 했지만 하도 늦은 시간이라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조변호사, 나 원 참,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냐.”


문사장의 하소연은 이랬다.


문사장이 세무 공무원에게 뇌물을 전달했다는 내용의 익명의 투서(投書)가 검찰에 제출됐고, 검찰은 그 투서에 근거하여 문사장을 긴급체포(범죄가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수사의 목적으로 일단 구속영장 없이 긴급하게 체포하는 것)하는 한편 문사장 회사를 급습하여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일반적으로 투서만 가지고는 검찰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데, 검찰이 긴급체포와 압수, 수색을 진행했던 것을 보면 투서의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었던 모양이다.

검찰이 긴급체포를 한 뒤에는 48시간 내에 피의자를 구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주어진 48시간 내에 범죄 혐의를 밝혀내야 하기 때문에 무리하게‘밤샘조사’ 등을 하기도 한다. 

문사장 역시 약 30시간 가량 조사를 받다가 방금 풀려났던 것이다.


# 2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뇌물... 줬냐?”

“뇌물은 무슨. 완전 근거 없는 얘기야. 어떤 놈이 날 모함하려고 그런 거지. 누군지 대강 감이 온다. 감이 와.” 

문사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문사장에게 뇌물 제공 사실을 자백하라고 몰아 부쳤지만, 문사장은 계속 이를 부인했다. 검찰은 문사장이 예상보다 강하게 부인하자 이를 반박할 만한 객관적인 물증이 없어 애를 먹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검찰은 회사 회계 장부를 들이밀며서 출금 내역 중 정확히 입증이 안 되는 항목에 대해 하나 하나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뭔가 하나 불고 가야 하지 않겠소? 이대로 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 회사 운영하면서 아무런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테고’라는 식의 타협이 들어왔다고 한다.

문사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투서에 기재된 내용의 죄가 없다면 석방하는 것이 맞을텐데 검찰에서는 뭔가 다른 ‘꺼리’를 요구했다.

문사장 역시 머리를 굴렸다. 문사장이라고 켕기는 구석이 없었으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분명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사장으로서도 적절한 선에서 검찰과 타협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그나마 제일 약할 것 같은 ‘범죄사실’을 하나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뭔가를 자꾸 바라는 눈치라서 도저히 그냥 나올 수는 없겠더라구.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3년 전 일을 선물이랍시고 하나 던져 주고 왔어.”


# 3

문사장은 3년 전에 B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10억 원을 대출받으면서 담당 상무인 최상무에게 리베이트로 5천만 원을 제공했었는데, 문사장 생각에는 어차피 상호저축은행 상무는 공무원이 아니어서 특별히 큰 죄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그 사건을 검찰에 자백했던 것이다.




검찰은 좀 더 ‘화끈한 것이 없냐’고 계속 추궁했지만 문사장은 끝까지 자신은 그 외에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버틴 결과 이제야 석방이 된 것이다.

“조변호사, 그런데 막상 검찰청을 나와서 생각해보니 최상무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그 양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혹시라도 그게 문제가 되면 내가 변호사 비용을 댈 테니 조변호사가 좀 변호해 줘.”

상호저축은행 임원은 공무원이 아니므로 직무와 관련해서 돈을 받았다면 뇌물죄는 성립하지 않지만 형법상 ‘배임수재(임무를 위배하여 돈을 받음)죄’가 성립한다.

“문사장, 잠깐 기다려봐. 최상무가 어느 정도 죄를 받게 되는지를 살펴봐야겠어.”

나는 급히 법전을 뒤적였다.


# 4

“형법 제357조(배임수증재) ①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일단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구나.

그런데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에 관하여 죄를 지으면 가중처벌 되도록 한 법률이 있다. 특경법(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바로 그것이다.

“특경법 제5조(수재 등의 죄) ①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을 수수(收受), 요구 또는 약속하였을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④ 제1항의 경우에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금품이나 그 밖의 이익의 가액(이하 이 조에서"수수액"이라 한다)이 3천만 원 이상일 때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 처벌한다.

1. 수수액이 1억 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수수액이 5천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일 때 :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최상무가 받은 돈은 5천만 원이므로 특경법 제5조 4항 2호에 해당되어 최상무의 법정형은 7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7년 이상이라.

문제가 심각했다. 법관이 아무리 최상무에게 약한 벌을 주고 싶어도 일단 법정형에 ‘벌금형’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벌금형을 줄 수가 없다. 그리고 징역형의 형기(刑期)도 최소한이 7년이다.


# 5

“문사장, 이거 심각한데. 최상무는 7년 형을 받게 돼.”

“뭐라고? 7년 형? 아니 고작 5천만 원 받은 걸로 7년형이 말이 돼? 무슨 법이 그래?”

“우리 법의 형벌이 사실 아주 센 편이야. 잘 몰라서 그렇지. 그리고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책임이 더 가중되어 있고. 큰일이네.” 

“그럼 무조건 7년 형을 산단 말야? 좀 깎이는 거 없어?”

“물론 법원이 한 번은 깎아줄 수 있어. 최상무가 전과가 없고 깊이 반성하는 등의 정상참작 사유가 있으면 작량감경(酌量減輕)이라고 해서 절반 정도로 감형이 돼. 그래도 징역 3년 6월 이상인데?”


“집행유예라는 것도 있지 않나? 징역 3년 6월에 집행유예 5년, 뭐 이렇게 되면 일단은 석방되는 거잖아?”


물론 문사장 말대로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해 준다면 일단은 석방된다. 

즉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의미는, ‘당신의 죄는 1년간 교도소 생활을 해야 마땅하나 전과도 없고 깊이 반성하니 일단 석방해 주겠소. 그래서 2년 동안 아무런 일이 없으면 1년간 교도소 생활을 한 것과 같이 취급해 주겠소.’라는 것이다.

따라서 재판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징역 6월’보다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더 선호한다. 집행유예가 부과되면 일단은 석방될 수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법원이 집행유예를 해 주기 위해서는 본형(本刑 ; 기본이 되는 형)이 징역 3년 이하여야 한다. 지금 최상무의 경우 법정형이 징역 7년 이상이라서, 최하한인 징역 7년을 선택한 다음 1번 깎는다고 하더라도(작량감경), 본형(本刑)은 징역 3년 6월로, 징역 3년을 초과하기 때문에 법상 집행유예를 붙여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최상무는 한번 감경된다 하더라도 3년 6개월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 6

문사장은 당황했다. 자기로서는 그나마 가벼운 범죄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백했던 범죄가 상대로 하여금 3년 6개월을 교도소에 있게 할 정도의 중죄(重罪)였다니.

“조변호사,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나는 급히 형법전을 다시 뒤적였다.

“문사장, 딱 하나의 방법이 있어.”

‘형법 제52조(자수, 자복) ① 죄를 범한 후 수사책임이 있는 관서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즉, 최상무가 ‘자수’를 한다면 한 번 더 감경이 될 수 있다. 그럼 ‘징역 3년 6월 이상’이 ‘징역1년 8개월 이상’으로 감경되므로, 본형이 3년 미만이어서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따라서 최상무는 ‘자수’를 해야지 결코 ‘체포’되어서는 안 된다. 자수는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자발적으로 나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점에서 체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는 문사장에게 소리쳤다.

“문사장! 지금 바로 최상무에게 전화해서 집에서 튀어 나오라고 해. 수사관이 지금은 아니지만 내일 아침에 체포하러 갈 수도 있어!”

“아... 내가 지금 전화할 용기가 안 나. 미안하지만 조변호사가 전화해서 상황설명을 좀 해줘.”


# 7

문사장으로부터 최상무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건네 받은 나는 급히 최상무와 통화를 시도했다. 거의 11시가 다 된 시간에 초면(初面)의 변호사가 전화를 걸었더니 최상무는 다소 언짢아하면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분히 설명을 들은 최상무.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체포되면 곤란하니 지금 당장 집을 나오시고 내일 저와 미팅을 가진 후, 함께 검찰청에 들어가시죠.”

“다른 방법은 없는 거죠?” 

“지금 우물쭈물할 때가 아닙니다.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절대 체포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상무는 내 전화를 받은 뒤 급히 짐을 싸고 집을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최상무 집으로 검찰 수사관이 들이 닥쳤다고 한다. 물론 검찰 수사관들은 최상무를 체포할 수 없었다.

그 날 오후 최상무는 자신의 범행(대출 과정에서 금전을 취득한 행위)을 자세하게 기재한 ‘자수서(自首書)’를 작성한 뒤, 나와 같이 검찰청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자수 절차를 밟았다.


# 8

어차피 죄를 전부 인정한 상황이었기에, 형사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나는 최상무의 변호인으로서, 최상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 돈을 상호저축은행 활동비로 사용했던 점,그에게 전과(前科)가 없는 점, 현재 노모(老母)가 병석에 있는 점 등을 감안하여 최대한 선처해 달라는 취지의 변호를 했다.

변호를 하면서 최상무와도 인간적으로 친밀해졌다.

“처음엔 진짜 억울하더군요. 문사장에게 어떻게 복수할까 하는 생각에 잠이 안 왔습니다.제가 알고 있던 문사장의 다른 비리도 있거든요. 아마 문사장이 그런 사정까지는 변호사님께 말 안했을 걸요? 기분 같아서는 그 내용까지 전부 수사기관에 불어버리고 싶습니다.”

나는 굳이 지금 와서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면서 최상무를 달랬다. 최상무의 투서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

1심에서 최상무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과 추징금 5,000만 원의 형을 받았고, 굳이 항소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상무는 집행유예 형을 받았기에 인사규정상 더 이상 상호저축은행에서 근무할 수 없어 면직처리 되었다.


# 9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되고 공식적으로 사건을 종결하던 날 최상무는 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이유 없이 받은 돈은 반드시 나중에 토해 내야 한다는, 그리고 토해 낼 때는 복리(複利) 이자를 붙여서 토해 낸다는 진리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좋은 공부 했습니다.”

‘복리 이자’라는 말이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과연 우리는 오늘 어떤 ‘원금’을 인생 계좌에 예금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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