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건설의 함부장은 내 앞에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변호사님, 이거 정말 난감합니다. 인허가 작업이 지연되면 하루 손해액만 천 만원에 이릅니다. 사장님은 당장 해결하라고 난리시고. 이번 주 내로 바로 법적 조치를 취해주십시오.”
사정은 이랬다.
N건설은 현재 동부 이촌동에서 오피스텔(15층)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인허가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그 오피스텔이 올라가면 자신의 아파트에서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한강 조망권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김00씨가 계속해서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었고, 관할 구청은 N건설에게 민원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인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라고 한다.
N건설로서는 빨리 공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은 사업비의 이자를 계속 물어야 할 판이었다.
함부장은 내게 김씨를 상대로 ‘공사방해금지가처분’을 제기해 줄 것과, 형사적으로는 ‘업무방해죄’로 고소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함부장을 진정시키고, 몇 가지 점을 확인했다.
여러 아파트 주민 중에서 유독 김씨 한사람만 이의를 강하게 제기한다는 점에서, 뭔가 감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직감했다. 그래서 김씨에 대한 신상정보와 김씨에게 N건설의 누가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물어보았다.
김씨는 60대 후반의 완고한 남성이며, 최초 N건설의 담당 대리가 방문해서 ‘법상 조망권은 잘 인정되지 않는다. 괜히 민원을 계속 제기하면 서로 피곤하니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신 어느 정도 배상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씨는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어디 한 번 해보자’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나는 N건설 담당자의 접근이 대단히 서툴렀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지금 당장 민, 형사상의 법적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그 절차가 마무리 될 때까지 최소한 3-4개월은 걸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함부장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냐면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돈을 받고 민, 형사상의 조치를 취해주면 되겠지만, 그 방법이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 같지 않아서 영 내키지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좀 더 적극적인 협상을 진행해 볼 것을 권유했다.
내가 함부장에게 제안한 방법은 이랬다.
- 우선 김씨를 민원인으로만 여기지 말고 ‘화가 난 이웃집 어르신’으로 생각해야 한다.
- N건설 담당 직원 중 젊은 대리급이 아닌 40대 이상의 중견 간부가 협상 대상자로 직접 나서되 최대한 김씨의 자존심을 살리는 방법으로 진행하라.
- 협상자인 중견간부는 N건설 내부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강경파(법적으로 대처하자는 파)와 온건파(원만히 타협을 하자는 파)가 있는데, 자신은 온건파의 대표로서 온 것이라는 점을 밝혀라.
- N건설에게 부담이 안 될 정도의 유인책을 마련하라.
N건설에서는 논의를 거쳐 사람 좋기로 유명한 영업수주팀 박부장(48세)이 협상대상자로 나섰다. 박부장은 홍삼 엑기스를 사들고 김씨집을 방문했다. 마뜩찮은 표정으로 박부장을 맞은 김씨. 하지만 문전박대를 하지는 않고 같이 거실로 들어왔다.
박부장은 김씨에게 앉으라고 말하고는 큰 절을 하려고 했다. 김씨가 손사래를 치자 “전 시골에서 자라놔서 어르신 계신 데 가면 항상 큰 절을 하라고 아버님께 배웠습니다.”라고는 넉살 좋게 큰 절을 했다.
박부장은 집 내부를 둘러보면서 “어르신께서 인테리어를 정말 멋지게 해 놓으셨군요. 우와,한강 조망이 정말 좋군요. 정말 이 전망이 가려진다면 저라도 속이 쓰리겠습니다. 그나 저나 이 집은 어떻게 장만하신 거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박부장에게 차를 건네면서, 일찍이 상처(喪妻)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어렵게 돈을 모아 이 집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 집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컸던 것이다.
박부장은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를 김씨의 두 아들에게로 돌렸다. 그러자 김씨는 현재 대기업에 다니는 큰 아들에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둘째 아들은 군 제대 후에도 아직까지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속을 썩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어 김씨는 N건설이 이렇게 마구잡이로 오피스텔을 지어도 되는지에 대해 성토했고, 박부장은 오히려 김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그 불평을 다 들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박부장은 김씨가 정말 화가 났던 이유는 N건설에의 젊은 대리가 와서는 고압적인 자세로 법과 판례를 들먹이면서 ‘법대로 하겠으니 버텨봐야 소용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씨는 그 때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부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정말 결례를 했다’며 정식으로 사과했다.
박부장은 거실에 골프 연습장비가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김씨에게 골프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더니, 김씨의 유일한 낙은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퍼블릭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박부장은 어느 정도 김씨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이번 오피스텔 공사는 N건설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투입된 사업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위에서는 법적으로 진행하라고 지시했지만, 박부장으로서는 웬만하면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보자는 입장에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막상 와서 보니 김씨의 집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어서 자신도 이 문제를 최대한 원만하게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현행법이나 판례상 태양을 볼 권리인 일조권과는 달리 아름다운 경관을 볼 권리인 조망권은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난 번 대리가 와서 설명하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윽박지르는 방식이 아닌 최대한 차분하고 공손하게 근거를 대면서 설명했다.
그러자 김씨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나도 알아봤어요. 진짜 그렇더만요. 법이 뭐 그런지... 나원참”
박부장은 김씨도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용기를 내어 김씨에게 다음 두 가지 제안을 했다.
지금 현재 취업을 위해 노력 중인 둘째 아들을 N건설 계열사에 인턴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고,
둘째로 N건설이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는 회원제 골프장에 1달에 1번 정도 회원 대우로 부킹을 해 드릴테니 친구분들과 같이 운동을 하시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김씨는 무엇보다 둘째 아들에게 N건설이 인턴사원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을 못 이을 정도로 고마워했다. 부인을 잃고 혼자서 키운 아들이었기에 그 정이 더 애틋한 것 같았다. 그리고 골프 부팅에 대해서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물론 박부장의 호의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박부장은 함부장과 같이 내 사무실에 와서 김씨와의 만난 일을 보고하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박부장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박부장의 성격 자체가 윗 어른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컸었고, 또 실제 김씨를 만나면서 어떻게든 그 분의 감정을 잘 헤아리려고 진정성 있게 노력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법무 담당자인 함부장은 초조하게 내게 앞으로의 전망을 물어봤다.
“박부장님이 워낙 잘 대응하셔서 좋은 소식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희망 섞인 답변을 했다.
박부장이 김씨를 방문한 그 다음날 김씨는 관할구청을 방문하여 이미 제기했던 민원을 취하했다. 박부장은 약속대로 김씨의 아들을 N건설 계열사에 인턴으로 채용했으며, 수시로 김씨의 아들을 불러서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그리고 박부장은 김씨를 초청해서 같이 골프를 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해 갔다.
만약 N건설이 김씨를 상대로 공사방해금지가처분을 신청하거나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를 했다면 김씨 성격에 법상 허용된 모든 대응을 다 했을 것이며, 그랬다면 민원으로 인한 분쟁은 6개월 이상 지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사려 깊게 다가 간 박부장의 노력으로 N건설은 20억 원 상당을 줄일 수 있었다.
나로서는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민, 형사상의 모든 조치를 다 진행했더라면 최소한 2,000만 원 정도의 변호사 보수를 챙겼을 수도 있었겠지만,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했고, 그것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되자 N건설의 나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졌다.
박부장은 그 해 연말 정기인사에서 이사로 승진했다.
이 공사민원을 해결한 것이 승진에 결정적이었다는 뒷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흐뭇했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