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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09. 2016

어느 법무팀장 이야기

조우성 변호사의 Law Essay

기본적으로 fact에 근거하되 의뢰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좀 더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세부적인 내용에는 변경을 가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사람 사이에 분쟁이 없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이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이 진행될 때 사람들은 불안해지거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한다. 사실 따져보면 문제의 핵심이 자신에게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분쟁이 촉발되었다. 그 책임은 도저히 내게 있지 않다. 온전히 상대방의 몫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떼를 쓰고 있다. 웃기는 상황이다. 이때 법의 힘을 빌어 상대방을 응징하면 일은 간단하다. 


하지만 더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더 깊은 방법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도움을 주려하면 창조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지혜라 부른다.



G사 법무팀장인 황 경찬 부장은 머리가 좀 아팠다.


G사는 아이스크림과 케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프랜차이즈 본사. 약 200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 서울 강북구 번동의 가맹점주인 권 사장이 G사에 내용증명으로 통보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G사 프랜차이즈 점포개발팀 직원 설명을 믿고 이 사업의 전망이 좋겠다는 생각에 프랜차이즈 계약을 한 것인데, 막상 영업해보니 적자만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이 건물에 들어오면서 전 임차인에게 권리금으로 5,000만 원을 줬다. 인테리어 비용도 3,000만 원이 들었다. 그런데 도저히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으니 그동안 투자한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합계 8,000만 원을 돌려받고 프랜차이즈 관계를 끊고 싶다. 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소송도 하고 언론에도 제보하겠다.’



G사가 의도적으로 가맹점주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한 바는 없다. 따라서 법적으로만 따져보면 가맹점주인 권 사장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전망을 판단하는 것은 가맹점주의 결정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G사는 권 사장의 요구에 응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동안은 G사 점포 개발팀이 권 사장을 상대해왔는데, 서로 말싸움만 계속되다 보니 결국 권 사장은 G사 대표이사 앞으로 통보서를 보내온 것이다. 


G사 경영진은 이번 일에 권 사장 요구를 그대로 들어준다면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법무팀에게 법에 따라 최대한 강하게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




“팀장님. 통보서에 대한 답변서 작성했습니다.”


황 부장은 부하직원인 김 변호사(사내변호사)로부터 답변서 초안을 건네받았다. 

“보시고 수정할 것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제가 수정한 다음 내용증명으로 발송하겠습니다.”

“음. 알겠어. 일단 내가 좀 볼게.”


황 부장은 김 변호사가 작성한 답변서 초안을 읽어보았다. 


1) 귀하는 귀하의 판단으로 본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당사가 제공한 자료는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2) 귀하의 기대와 달리 영업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은 본 프랜차이즈 계약의 적법한 해제사유가 될 수 없다.

3) 더욱이 권리금에 대해서는 본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 입장이며, 인테리어 비용에 대해서는 계약 내용을 보더라도 본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4) 오히려 본사로서는 귀하의 통고서 내용을 살펴볼 때 더 이상 정상적인 가맹점을 운영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5) 이에 본사는 귀하에게 3개월의 여유를 줄 터이니 그 기간 동안 사업을 정리하고 본사의 모든 간판, 집기, 재료 등을 반납하기를 요청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일체의 손해를 배상청구할 것이다.


역시 김 변호사는 군더더기 없이 쟁점을 잘 정리했다.

황 부장은 김 변호사에게 웃으며 말을 건냈다.


“김 변호사, 나랑 번동 좀 다녀오자.”

“네? 직접 만나시려구요? 그냥 내용증명으로 발송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가서 괜히 언쟁을 하게 될 수도 있을 텐데요.”

“바람도 쐴 겸 다녀오자.”


경력 1년차인 김 변호사는 황 부장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사가 그러자고 하니 따를 수밖에.




번동의 그 가맹점 근처에 도착한 황 부장 일행. 멀찍이 보이는 점포 안에는 사장인  듯한 중년 남자가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고, 그 남자 무릎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 여자 아이가 앉아있었다.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황 부장은 근처 편의점에서 홍삼쥬스 1박스를 사서 들고는 점포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네... 누구신지?”


“네, 저는 G사에서 나온 법무팀의 황경찬이라고 합니다. 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황 부장이 자기소개를 하자 권 사장은 표정이 바뀌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왜 제가 보낸 내용증명에는 대답을 안 하는 거요?”


김 변호사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됐다. 속이 부르르 끓어올랐지만 일단 참았다. 


황 부장은 웃으며 “사장님, 날도 더운데 좀 앉으시죠. 아이스크림 2개만 주세요. 물론 돈 내고 먹겠습니다.”라고 말하더니 테이블에 앉았다.


권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놓았다. 황 부장은 권 사장 옆에 있던 아이에게 “눈이 참 예쁘네. 올 해 몇 살이니?”라고 묻자, 아이는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9살요”라고 답했다.


“사장님, 그렇게 서 계시지 마시고 여기 좀 앉으세요.”

황 부장은 부드럽게 권 사장의 팔을 이끌었다.


“사장님 이거 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건설회사에서 회계를 봤어요.”


“아하, 그럼 장사는 처음이시겠군요.”

“그렇소. 갑자기 명예퇴직을 당하게 되어 앞이 막막하던 차에 그래도 프랜차이즈를 하면 낫겠다 싶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이걸 시작했단 말이오”


황 부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사장님 자제분이 어떻게 되세요? 전 딸만 둘인데.”

“저도 딸만 둘이오. 큰 애는 초등학교 6학년이고 얘가 둘째...”

“우리 둘 다 딸딸이 아빠네요. 솔직히 키우는 재미는 딸이 훨씬 좋죠.”


김 변호사는 황부장의 객쩍은 대화를 듣고 있자니 시간낭비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장님, 영업하시는 데 뭐가 제일 힘듭니까?”


“휴... 일단 장사가 너무 안돼요. 주위에 학교가 몇 개 있어서 장사가 잘 될 줄 알았는데 완전 헛다리 짚었어요. 거기다 다음 달에는 저쪽 건너편 건물 1층에 대형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가 들어 온다고 하고...”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권 사장은 뒷목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음, 사장님 통보서에는 계약 끝내자고 하셨던데, 이거 접고 나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다른 아이템을 준비 중인가요?”

“딱히 뭐 그런 것 없고... 하지만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이대로 있는 건 바보짓 아니오? 본사에 대한 내 권리는 내가 지켜야 하지 않겠소?”


“사장님, 제가 이 점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 봐도 될까요?”


황 부장은 갖고 간 업무노트를 펼쳐서 뒤적이더니 권 사장에게 말했다.

권 사장은 여전히 마뜩찮은 표정으로 황 부장을 쳐다봤다. 


“사실 제 고등학교 선배가 봉천동 지점에서 이 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G사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저희와 계약을 하셨죠. 그런데 선배도 직장생활하다 사업을 시작한 거라 사장님처럼 처음에는 아주 고전했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 끝에 지금은 아주 잘나가는 점포가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저도 배운 게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한마디 훈수를 드리자면요...”


황 부장의 설명은 이랬다.


‘본사에서는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비용을 책정하여 가맹점 별로 이벤트 지원을 하고 있는데, 권 사장은 그 이벤트 행사를 한 번도 신청한 바가 없더라. 일단 그 이벤트를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G사 프랜차이즈는 그 제품 특성상 인근 학교 학생들을 주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중, 고등학교에는 다양한 동아리가 있어서 특별활동이 진행되는데 그 동아리 중 몇 개를 선별하여 정기적으로 제품을 후원해주겠다고 제안해 보시라. 부정한 거래가 아니라 마케팅 관점에서 이런 프로모션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선생님이나 학생 대표에게 설명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봉천동 지점 선배도 그렇게 뚫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

또 봉천동 지점 선배는 마술사들을 초청해서 자주 이벤트를 했다. 내가 그 선배를 통하면 아주 저렴하게 그들을 초청할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본사에 이야기해서 최대한 비용 지원을 받아주겠다.‘


권 사장은 처음에는 황 부장의 이야기에 별 반응이 없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제가 명색이 법무팀장입니다. 통보서 보내신 거에 대해 답변서 보내고 하는 식으로는 얼마든지 싸울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에 대해서는 본사가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계약이나 법상 그렇습니다. 주위 법률전문가에게 물어보세요.”


황 부장은 권 사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장님. 봉천동 지점도 결국엔 일어섰습니다. 사장님도 할 수 있습니다. 한번 해보죠. 하다가 안되면 그때 다시 고민해 보자구요.”


권 사장은 난처함과 고마운 마음이 복합된 표정을 지으며 황 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사로 돌아온 황 부장은 점포개발팀과 마케팅팀을 오가면서 번동점의 활성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번동 주변 학교를 중심으로 한 프로모션 행사 관련해서는 본사 차원에서 학교 측에 공문을 보내 학생들의 생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교 행사에 협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고등학교는 학생회 측과 협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학생회 측에서는 협찬 제안에 대환영이었다. 


이어 황 부장은 봉천동 지점 선배를 통해 마술사 팀을 연락해서 저렴한 가격에 번동 점포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마술사 팀의 공연은 신의 한 수였다. 마술 공연이 진행되는 토요일 오전마다 번동 점포는 초등학교 학생들과 그 어머니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번동 점 매출은 완만한 성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변화는 권 사장이 사업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점이다. 건너편 건물에 있는 대형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점에 결코 밀리지 않았다. 




“진짜 한 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황 팀장님은 법대를 나온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처음 법무팀에 배정받아 갔을 때 ‘팀장에게는 별로 배울 게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짧았죠. 저는 대법원 판례, 계약 조항상의 권리를 들먹이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 팀장님은 그 사장님을 곤란에 빠진 한 사람으로 보고 마음을 다해 대하셨던 거죠.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제 갓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후배 김 변호사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황 팀장의 구수한 인상과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분쟁을 분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아픔을 관찰하고 어루만질 수 있을 때, 우리는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제 사례다. 

권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준 단 한 사람이 바로 황 팀장이었던 것. 

그야말로 ‘경청’은 인간을 위대하게 해 주는 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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