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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20. 2016

술에 취한 듯 들어라 – 리더의 전략적 경청

조우성 변호사의 한비자 리더십

▶ 생각의 테마     


‘직원들의 말에 경청하라’는 조언을 많이 듣습니다. 경청. 좋은 말이죠. 하지만 솔직히 저희 회사 같은 작은 기업은 전체적인 의사소통보다는 빠른 판단이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직원들의 인식 수준이 높다 한들, 24시간 회사에 대해 고민하는 CEO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리더가 상황을 빨리 판단하고 그에 맞는 지시를 내려 문제를 해결하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조직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경청을 강조하는 분들은 실제 조직을 이끌지 않은 분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제가 너무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고문변호사로서 고문기업과 거래를 시작할 때 담당 직원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사장님(회장님) 성격 아주 급하시죠?”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직원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략 이런 답이 따라온다.     


“흐흐... 뭐 다 그러시겠지만 저희 사장님은 특히나 더...”

“새벽에도 이메일 보내시고. 시도 때도 없지요. 저희들은 이제 많이 적응됐습니다.”

“안 된다는 보고를 하면 작살납니다. 왜 안 되냐고 반문하시죠. 어떻게든 해결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빠른 결단력, 강한 추진력이야 말로 오늘 같은 위기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적합한 리더의 모습이라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위기를 돌파하는 강한 리더의 모습'과 ‘경청하는 리더의 모습’은 전혀 화합하지 못하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타협적 공존도 가능할까.     




B사 유 사장은 선친의 뒤를 이어 회사를 운영하는 2세 경영인이다. 경영 일선에 뛰어들기 전에는 미국에서 컨설턴트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B사는 최근 신사업 진출과 관련한 이슈가 있어 나에게 자문을 구했고, 나는 전체적인 현황 파악을 위해 B사 전략회의에 몇 차례 참여했기에 회의의 전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 회의를 할 경우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그리고 각 흐름마다 중간 결론을 내리는 것도 사장의 몫이다. 직원들은 사장이 내린 결정을 열심히 수첩에 적는다.




하지만 B사 회의 모습은 달랐다. 30대 후반인 유 사장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가장 나의 시선을 끈 것은 회의 중 임직원들이 하는 대화를 유 사장이 거의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한다는 점. 눈을 지그시 감고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는 유 사장의 포즈가 진지해보였다.      


사실 사업의 비전문가인 내가 들어봐도 초점에 맞지 않거나 중언부언하는 말을 하는 임직원이 있었다. 어느 순간 적절히 끊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유 사장은 경청하며 열심히 메모했다. 

메모할 가치는 없어 보였는데도 말이다.     



“제가 좀 답답해 보이죠? 변호사님?”


식사 자리에서 유 사장이 내게 툭 던진 말에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깜짝 놀랐다.     


“그게... 사연이 좀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가장 강조하신 부분이 임직원들과 회의를 할 때는 그들의 말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봐도 어떤 이야기들은 별 의미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청하는 자세를 취하면 임직원들은 열을 올리며 자기 얘기를 합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하다보면 시간 낭비가 되지 않나요?”

유 사장은 웃으며 답했다.     


임직원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봐야 그 사람들의 생각, 더 나아가 그들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님은 이 부분을 강조하셨어요. 사실 사장이 주도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배치된다고 얘기를 끊어버리면 논의의 방향이 정해지죠. 그러면 그 이후에는 다들 그 방향으로만 따라옵니다. 하지만 귀를 열고 다소 힘들더라도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꼼꼼이 들어보면 회의만 해도 임직원들의 생각과 수준을 알게 되고 그들의 존재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답니다. 전 그게 결코 시간낭비라 생각지 않습니다.”     


오. 이런 생각을 했다고? 이건 한비자가 말한 것과 비슷한데?




한비자 양권(揚權)편에는 군주가 신하의 말을 들을 때 취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신하의 말을 들을 때는 술에 취한 듯하라’


신하의 말을 듣는 태도란 마치 술에 만취한 몸짓 같은 것이어서, 입술이여 이여 내 편에서 먼저 움직이지 말며, 이여 입술이여 더욱 더 바보처럼 입을 다물어라.

저편에서 스스로 말해오면 나는 그것을 통하여 알게 되며, 시시비비 다른 의견들이 폭주하더라도 군주는 이에 상대하여 겨루지 않는바, 허정한 상태로 하는 것 없는 자세가 도의 참모습이다.     


聽言之道, 溶若甚醉, 脣乎齒乎, 吾不爲始乎, 齒乎脣乎, 愈??乎. 彼自離之, 吾因以知之是非輻輳, 上不與構, 虛靜無爲, 道之情也.




그냥 듣는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한 듯 들으라구?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됐으나 찬찬히 생각해 보니 감이 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성보다는 감성 게이지가 올라있을 때 누군가 말을 하면 ‘응. 그래. 그렇지. 딸꾹’이라며 쉽게 긍정하게 된다. 논쟁이나 반박을 하기 위한 판단력이 부족한 상황이 되기에 그렇다.     


혹자들은, 한비자는 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독재적인 정치를 하는 군주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비자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잘못 이해한 결과라 생각한다.


한비자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름지기 군주는 신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흡수하라고 한다. 

왜 그럴까?     


한비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첫째, 신하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신하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 


만약 군주가 신하의 이야기를 잘라 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신하는 곧바로 군주의 의도가 어떤 것인지를 간파해 버리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군주의 뜻대로 발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군주로서는 신하의 진심을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하의 지혜를 활용할 수도 없게 된다. ‘신하의 지혜를 활용할 수 없다’는 데 한비자의 강조점이 있다.     


둘째, 책임을 지우기 위한 정책입안을 위해서도 경청이 필요하다는 것,


군주는 신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서, 그 의견에 기초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을 시켜야 한다. 그 정책 결과가 예상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신하가 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하의 의견에 따라 만들어진 정책이므로. 굳이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육의 효과는 볼 수 있다. 


만약 군주가 신하의 이야기를 중간에 잘라 버리고 자신의 뜻을 밀어 붙여 정책을 입안했다면, 그 정책은 군주에 의해 만들어진 정책이므로 설령 실패로 결론나더라도 신하에게는 ‘내 생각은 달랐는데’라는 변명의 여지를 줄 수 있고, 만약 그 실패를 이유로 신하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내심으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영(令)이 서지 않을 위험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비자가 말하는 리더의 ‘경청’은 ‘전략적인 경청’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코비는 자신의 베스트셀러인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경청을 함에 있어서도 상대방과 공감하는 ‘공감적 경청’이 중요하다고 했다. ‘공감적 경청’이란 나의 사고틀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준거의 틀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한 결과 공감적 경청을 방해하는 네 가지 요인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판단, 탐사, 충고, 해석이다.     




(1) 판단하며 듣는 오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그 의견에 동의하느냐 또는 동의하지 않느냐를 먼저 판단하는 습관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곧바로 “그건 아니지” 하면서 대화를 끊는 경우이다.      


(2) 탐사하며 듣는 오류     

상대에게 질문을 하되, 내 자신의 준거틀에 입각하여 질문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거래처에 갔다고 하는데, 간 거 맞어?”라는 식으로 질문하는 경우이다.


(3) 충고하며 듣는 오류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경험에 따라 충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은 진지하게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고 있는데 “사회란 다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답변하는 경우이다.


(4) 해석하며 듣는 오류

자기 자신의 동기와 행동에 근거하여 사람들의 동기와 행동을 유추하고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는 것 좋아하더니 실적이 그 모양이지”라는 식으로 대꾸하는 경우이다.     


한비자가 신하들의 말을 들을 때 ‘술에 취한 듯 들으라’고 한 것도 바로 이 네 가지 부정적인 선입관을 배제하고 들으라는 것을 충고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만한 사례가 있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조 사장.     


그는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의 현지 임직원들을 접하면서 그룹 간의 차이를 느낀다고 했다. 


몇 몇 그룹 임직원들은, 컨설턴트인 조 사장을 불러 놓은 자리에서, 조 사장이 어느 정도 보고를 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말을 끊고 자기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열심히 말한다는 것. 그런 식으로 논의를 진행하다보면 나중에는 시간은 시간대로 쓰고 충분한 보고를 못하게 된다.     


하지만 삼성그룹 임직원들은 하나 같이 컨설턴트들이 보고할 때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듣고만 있다고 한다. 조 사장이 속으로 ‘이 친구들이 이 분야는 정말 잘 모르나’리고 생각할 즈음에, 그들이 아주 신중하게 질문을 하는데 그 질문의 깊이가 대단하다. 그들은 컨설턴트의 설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더 깊은 수준의 질문을 툭 던지고는 다시 경청모드로 바뀐다. 조 사장은 삼성 그룹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할 때는 2배 더 긴장하게 되었다. 


“돈을 주고 컨설팅을 맡겼으면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야 본전을 뽑을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서도 자기 자랑하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미국에서 사업가가 투자가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려면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적한 층까지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사업가가 제대로 자신의 사업 내용을 설명해서 투자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투자를 받기 어렵다는 뜻인데. 이런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부담스럽고 호흡이 가빠질까?     




임직원들이 CEO 앞에서 엘리베이터 스피치를 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 지위가 높고 권한이 많은 사람 중에서 차분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갖춘 이를 찾기란 쉽지 않다. CEO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임직원들의 말허리를 자른다.     


“그래서 결론은?”

“요지는 뭐지?”

“됐고, 말하려는 포인트가 뭔가?”     


CEO는 왜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일까?      


CEO는 ‘나는 이 문제 말고도 결정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게 하지 말고 좀 더 요령껏 이야기하라.’ 또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 따라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내가 지시하는 사항을 당신이 듣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어 있어야 채울 수 있는 법. 


하지만 ‘너무도 꽉 찬’ CEO나 리더가 많은 것 같다. 무엇을 들이 부을 수 없을 정도로 꽉 차버린.     


리더가 조직원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는 이유는 ① 그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② 그들의 지혜를 최대한 활용하며 ③ 나중에 제대로 된 책임을 묻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리더의 경청은 전략적인 것이어아 하며, 이를 감당할 깜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 역시 당장 다음 회의 때부터 술 취한 듯 들어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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