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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23. 2016

인기투표에 1위하는 리더, 좋기만 할까?

조우성 변호사의 한비자 리더십

▶ 생각의 테마     


저희 대표님은 무엇보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청취하고 바로 해결책을 주기 위해 노력하시죠.

직원들도 처음에는 대표님과 거리를 두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부담을 덜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대표님이 젊으시고 젠틀해사 회사 내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답니다.

회사가 작을 때는 이런 대표님의 행동이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 규모가 커지고, 중간 관리자들이 많이 생겼는데, 대표님이 직접 직원들과 만나서 의견을 나누다보니 중간 관리자들이 좀 붕 뜨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좀 민감한 이야기이긴 한데, 대표님은 직원들로부터 좋은 형, 좋은 오빠로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호할 때는 좀 단호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세요. 그래서 저희같은 중간 관리자들이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리더십에 관해서는 워낙 다양한 논의가 있어서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한정짓기 어렵다. 조직이 처한 상황, 리더의 개인적 성향과 능력 등을 고려해서 바람직한 리더십의 모습이 개별적으로 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근하고 부드러우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그래서 조직원들의 인기를 얻는 리더의 모습. 많은 리더들이 꿈꾸는 모습이리라.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애정을 베푸는 리더의 모습은
어떤 부작용(副作用)을 낳게 될까?     




임 사장은 창업주인 선친 임 회장의 뒤를 이어받아 N 전기를 경영하는 2세 경영인. 그는 미국 유학 후 회사에 취직해서 경영수업을 받아오던 터였다.     


임 회장은 예전의 경영자들이 그랬듯 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회사를 마치 군대 조직처럼 이끌었다, 미국에서 5년 넘게 유학생활을 한 임 사장은, 아버지에 의해 굳어진 회사의 권위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신이 경영을 맡은 이후에는 자유로운 소통이 강조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임 사장은 자주 현장 직원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그들의 고충을 들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 선친인 임 회장의 리더십이 '제왕적 리더십'이었다면, 임 사장의 리더십은 소위 '섬기는 리더십'이라고나 할까?      




N 전기의 투자유치 관련 법률자문 때문에 나는 회사의 CFO이자 오랜 기간 선대 회장을 모셨던 김 이사와 회의를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김 이사는 임 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걱정이 많다고 했다. 평소 임 사장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던 나였기에, 김 이사의 걱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자세히 말을 듣고 보니 수긍되는 부분이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온정주의


임 사장이 직원들에게 형, 오빠처럼 대하다보니 임원이나 중간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강한 지시를 내리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      


두 번째 문제는 중간 관리자들을 뛰어넘는 직접 소통     


임원이나 중간관리자가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데, 직원과 친한 임 사장이 먼저 결과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 버리면 임원, 중간 관리자는 그 후에 엄격한 피드백을 하기 어렵다는 것. 만약 임원, 중간관리자가 사장과 달리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면 직원들은 '사장님은 괜찮다고 했는데...'라는 불만이나 투덜거림을 표시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이사가 걱정하는 점은 임 사장이 직원들의 인기에 집착한다는 부분


어릴 때부터 유학생활을 했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사랑이 고파서 그런지는 몰라도 임 사장은 직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의 표현을 받는 것에 아주 민감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그러다보니 CEO로서 악역을 담당해야 할 때도 임 사장은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김이사는 ‘아마도 회사 내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사장님이 1등일 겁니다. 하지만, 우린 아이돌 스타가 필요한 게 아닌데...’라며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따뜻하고 온화한 리더로서, 조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모습. 많은 리더들이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 한비자는 군주의 그런 로망이야 말로 꿈에 불과하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냉정하게 조언한다.      

인자한 리더가 과연 조직원들의 충성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한비자는 위나라 혜왕의 이야기를 예로 들며 군주의 자혜로움은 무조건 배척되어야 할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장려되어야 할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위나라 혜왕이 복피(卜皮)에게 물었다.


"선생은 과인의 평판을 어떻게 듣고 계신지"


복피는 "신은 대왕이 자혜(慈惠)롭다고 들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되묻기를 "그러면 나의 공은 어디에 이를 것 같소?"라고 하자 복피는 무심한 표정으로 "왕의 공은 멸망을 초래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복피의 말에 깜짝 놀란 왕은 "자혜(慈惠)는 선행일진데, 이를 실천하는 내가 멸망을 초래한다니 그 무슨 말이오?"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복피는 담담하게 말했다.


"무릇 자비로우면 인정상 차마 못하는 바가 있게 되고, 시혜를 즐기면 누구에게나 주기  쉽습니다.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 과오를 범한 자도 처단하지 못하게 되고, 시혜를 즐기다보니 공이 없어도 상을 베풀게 됩니다. 잘못해도 벌하지 않고 공이 없어도 상을 받는다면 그런 나라는 멸망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복피의 이 말은 스스로의 인기에 도취해 있던 혜왕에게는 아주 따끔했으리라.     


한비자가 위 이야기를 통해 군주에게 조언하고자 한 바는, 군주의 인자함과 자혜로움 그 자체가 문제된다기 보다는 인자함과 자혜로움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군주 스스로 그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면(위 이야기에서 위나라 혜왕은 자신이 자혜롭다는 평가를 받는 것 자체에 무척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상이 남발되는 대신에 신하의 잘못을 질책할 수 없게 되어 결국 조직의 건강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한비자는 그의 책 여러 곳에서 유가(儒家)식의 인자함과 자혜로움의 병폐를 지적한다.      


무릇 인자하다는 것은 동정하는 마음씨이며 은혜라는 것은 베풀어주기를 좋아하는 마음씨입니다. 그러나 동정하는 마음이 있으면 측은하여 잘못이 있어도 처벌하지 않으며 베풀어주기를 좋아하면 공이 없어도 상을 주게 됩니다. 잘못이 있는데 죄가 되지 않고 공이 없는데 상을 받는다면 비록 망한다 하여도 역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夫慈者不忍, 而惠者好與也, 不忍則不誅有過, 好予則不待有功而賞, 有過不罪, 無功受賞, 雖亡, 不亦可乎     

- 내저설 상 칠술(七術) -      


이런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한비자를 인정사정 없는 냉혈한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혼란의 세월. 그럼에도 권신(權臣)들은 군주의 귀와 눈을 가리며 사리사욕을 취하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전국시대 말엽. 한비서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냉철하면서도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꿰뚫는 군주의 명철함과 단호함을 바랐던 것이다.      


한비자는 흔히 마키아벨리와 비견된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 하면 권력의 획득, 유지, 증대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윤리적인 권모술수를 가리키는 말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15-16세기의 이탈리아가 처한 군웅할거, 약육강식, 외세개입의 분열시대를 배경으로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데서 '현실정책'을 일깨웠을 따름이라고 보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한비자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마키아벨리 역시 통치자의 안이한 자비심이 국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자하기 때문에 도리어 혼란상태를 조성하고 끝장에 살육과 약탈을 초래하는 군주보다는 잔인한 군주 편이 나은 것이다. 잔인한 군주는 특정인을 해칠 뿐이지만, 인자한 군주는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를 해치기 때문이다““ (군주론 17장).     


군주에게 잔인할 것을 권고하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에 선뜻 동조하기는 힘들지만, 인기에 영합하는 우유부단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그의 충언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마키아벨리는 ‘정치학은 윤리학의 시녀일 수 없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명제는 ‘당위’를 탐구하는 윤리학과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고 분석해야 하는 정치학, 이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할 수 없다는 마키아벨리 특유의 현실성이 반영된 명제이다. 바로 이 명제를 구체적으로 주장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를 근대 정치학의 창시자라고 부르곤 하는데, 한비자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윤리의 문제와 정치의 문제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음을 알 수 있다.     




“논어”에 ‘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덕으로서 정치를 행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정녕 나를 등용하여 국정을 맡기는 군주가 있을진대 1년이면 실적을 나타낼 수 있다. 3년이 주어진다면 완전한 정치를 실현시키겠다’‘고 말한바 있다(논어 자로편). 그러나 어느 군주도 공자에게 국정을 맡기지는 않았다. 난세에 인의(仁義)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효용도 없을 뿐더러 국가유지마저 위태롭게 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한나라 고조(유방)는 유자(儒者)를 줄곧 멸시했었다. 그러나 천하를 평정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유자란 정권쟁탈과정에서는 더불어 이야기 할 상대조차 못되지만, 왕조를 수립하고 유지하는 단계에서는 쓸모가 있다(儒者難與進取可與守成)’고 한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결과였다고 한다. 결국 난세를 돌파하기에는 유가의 가르침이 허약하고 너무 이상적이라는 점에 대해서 당시의 통치자들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한비자는 공자보다 훨씬 능력이 떨어지는 애공(哀公)이 오히려 군주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인의가 아닌 세(勢)와 권위가 있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민(民)은 본래 세(勢)에 굴복하지만 의(義)를 따를 수 있는 자는 적다. 공자는 천하의 성인이다. 행실을 닦고 도를 밝혀온 천하를 돌아다녔다. 온 천하가 그 인을 좋아하고 그 의를 찬미하였으나 제자가 된 자는 일흔 사람이었다. 대개 인(仁)을 귀히 여기는 자가 적고 의를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크기를 가지고도 제자가 된 자는 일흔 사람이며, 인의를 행한 자는 한 사람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은 하급의 군주다. 그가 왕위에 올라 나라의 군주노릇을 하자 도성의 민이 감히 신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이란 자는 본래 세에 굴복하므로 세가 정말 사람을 쉽게 복종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도리어 신하가 되고 애공이 도리어 군주가 되었다. 공자는 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세에 굴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를 가지고 한다면 공자가 애공에게 복종하지 않으나 세에 의존한다면 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다.      

지금 학자들은 군주를 설득하면서 반드시 남을이기는 세에 의존하지 않고 인의만을 힘써 행하면 왕 노릇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군주가 반드시 공자의 수준에 미치기를 바라고 세상의 평범한 민까지 모두 여러 제자들같이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결코될 수 없는 도리이다.”     




다시 N 전기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임 사장이 경영을 맡은 지 2년쯤 지나자 거래처로부터 품질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친 회장 때보다 엄격한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납품을 했다가 품질 문제로 반품을 요구받는다든지 계약해제로 손해배상청구까지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나는 그 뒤처리를 위해 몇 건의 내용증명 발송과 소송업무를 담당했다.      


품질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두고 어떻게 전적으로 임 사장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부에서는 임원 및 중간관리자들이 현장 직원에 대해 취해왔던 엄격한 관리, 준엄한 질책이 CEO의 소통중심 경영에 밀려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몇 몇 임원들이 임 사장에게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조언했다.     


임 사장은 임원들의 조언을 경청한 뒤 자신이 직접 현장 직원들과 만나서 의견을 교환하고 그 업무에 대해 평가하거나 칭찬하는 일을 자제했다. 그 동안 소외되었던 중간관리자들에게 제대로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N전기 내부적인 문제도 조금씩 해결되어 가는 분위기다.     




인간적인 배려와 진심어린 마음의 교감을 바탕을 둔 리더십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추구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인기만을 좇는’ 리더의 모습은, 스스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직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강조할 경우 중간관리자들이 실질적으로 지휘계통에서 배제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별 있는 인자함’과 ‘인기영합’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인기에 굶주려 있는 것은 아닌지, CEO는 냉엄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권위와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냉정히 따져보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CEO는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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