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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an 25. 2016

침묵하는 사람은 조직의 Free-Rider다.

조우성 변호사의 한비자 리더십

생각의 테마     


회사에서 회의를 주재할 때마다 느끼는 고민이 있습니다.

임원회의든 팀장회의든, 아니면 전체 회의든 명확히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지간해서는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향의 차이가 작용하는 면도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적극적인 사람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겠지요.
저도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침묵하는 사람들이 신경 쓰입니다. 그 사람들이 전체 회의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연 결론에 진정으로 동의하는지 궁금하거든요.

사장으로서, 별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 생각은 무엇입니까?’라고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좀 그렇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저 뿐만은 아니겠지요?     

     



조직에서는 회의를 통해 중요사항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리라.


이런 회의 자리에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 아예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 사람 등 여러 부류가 있다.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은 사람의 생각은 어떠할까. ‘침묵은 긍정’이라는 말로 넘기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내가 실제 수행했던 사건을 예로 들어본다.     



‘손만 든’ 임원의 변명     


K 컴퓨터는 회사가 외부에 투자하는 건이 있으면 반드시 이사회에 상정해서 이사들의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


한 사장은 대표이사로서 이사회를 진행하며 이 같은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다른 이사들의 의견을 구했다. 이사들 중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한 사장은 안건에 대해 이사들이 특별한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전원 찬성으로 투자를 결의했다.


이런 방식으로 투자를 집행한 것이 총 3건, 합계 45억 원.     


하지만 때가 좋지 않았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대변되는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K 컴퓨터의 투자는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결과적으로 투자금 전부를 손실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속이 쓰릴 일이다.


그러자 K 컴퓨터 주주 중 몇 명이 한 사장을 포함한 K 컴퓨터 이사 전부를 상대로 5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표이사, 이사는 회사와 사이에 법적으로 ‘위임’ 관계다. 따라서 대표이사,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갖고서 업무를 진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상법). 그런데도 대표이사, 이사가 신중을 기하지 못하고 충분히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부주의하게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회사에 투자손실을 끼쳤으므로 대표이사, 이사는 각자 연대하여 회사에 그 투자손실금 및 이자를 합한 금액을 토해내야 한다는 것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주주들의 주장이었다. 이를 주주의 대표소송이라고 하는데, 주주들의 권리의식이 강조되면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소송의 형태다.     


이 사건의 피고는 대표이사인 한 사장과 일반 이사 4명, 합계 5명이었다.


한 사장은 나에게 이 사건의 방어를 위임했다. 나머지 이사들은 다른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상태였다. 한 사장과 이사들은 이해관계가 사실상 같으므로 한 명의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진행하는 것이 당연한데 왜 다른 변호사에게 사건을 따로 따로 맡기는지 궁금했다. 나의 질문에 한 사장의 답은 이랬다.      


“이사들은 억울하답니다. 투자에 관한 결정은 대표이사인 제가 다 한 것이고 자기들은 아무 결정권이 없었다고 주장하는군요, 따라서 자기들은 주주들의 청구에 적극적으로 다툴 텐데, 그 점에서 대표이사인 저를 공격해야 할 수도 있기에 부득이 다른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고 하더군요, 대표이사가 사실상 독단적으로 결정을 했으니 최종적으로도 대표이사만 책임을 져야지 나머지 선량한 이사들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정말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한 사장의 말은 이어졌다.      


“임원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이사회 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 이제 와서 자기들은 책임 없다면서 빠져 나가는 건 무책임한 일 아닙니까? 그러고도 임원인가요?”     




한 사장은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이사들도 이사회에서 논의된 그 투자건에 대해 찬성을 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고 한 사장은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과연 다른 이사들은 그 투자건에 대해 찬성하는 마음이었을까? 소송 진행 과정에서 다른 이사들은 변호사를 통해 이런 주장을 폈다.      


‘솔직히 저희 이사들은 대표이사의 투자 제안에 대해 반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 분위기를 말씀 드리자면 대표이사가 하자고 하면 이를 반대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이사회는 형식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는 대표이사가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사들에게 반대할 권리도 주지 않은 채 대표이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다른 이사들이 연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책임법의 근간을 이루는 ‘자기책임(自己責任)의 원칙’에 반하는 일입니다.‘     


과연 문제가 된 제안들은 전부 한 사장이 발의했던 건들이다.     


“변호사님, 제가 뭐 혼자 잘되려고 그런 제안을 한 건가요?

당시 PC 산업은 이미 사양국면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희 회사로서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구요.

저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렵게 투자기회를 찾았던 겁니다.

No Risk, no gain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하지만 저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이사회를 열었던 겁니다. 세상에... 연봉 1억이 넘는 임원들이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겁니까?”     


이 사건에서 K 컴퓨터 이사들은 평소 한 사장이 이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했던 업무 처리 방식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들이대며 반박했다.


그 결과 법원은 한 사장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웠고, 다른 이사들은 한 사장의 1/3 정도 책임을 부담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정말 볼썽사나운 집안 싸움이 1년간 진행되었다.     


나는 이 재판을 진행하면서 다른 이사들의 주장이 무책임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 사장에게도 중대한 실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리더라면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조직원보다 찬성하는 조직원이 더 마음에 들 것이다. 리더의 지향점이 이미 명확해 진 상황에서 이에 대해 비판하면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요청하는 조직원에 대해 리더는 야속하게, 혹은 괘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인지상정이리라.     


하지만 리더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리더가 제안한 의견에 ‘침묵’하고 있는 직원들이 그 의견에 모두 찬성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리더로서는 침묵을 ‘긍정’으로 이해하고 싶겠지만 ‘침묵’의 숨은 의미는 ‘긍정’만이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한 사장은 분명 자신이 그 투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다른 이사들에게 비쳤을 것이고, 다른 이사들은 그런 사장의 마음을 읽고는 굳이 드러내서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뒤에 문제가 되자 이사들은 자신들의 속마음을 뒤늦게 주장하고 나선 것.     




한 사장 사례에 적용가능한 문구를 한비자에서 찾아보자.

한비자는 <남면> 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책임을 두려워해 의견을 내지 않으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발언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군주는 신하가 의견을 올릴 경우에는 반드시 그 처음 의견을 기억하여 말과 성과가 부합하는지 살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견을 물어 책임을 지게 한다면, 신하들은 허황된 말을 삼갈 것이며, 침묵만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하된 자가 책임이 두려워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면, 군주는 그 신하의 의견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물은 다음 그 의견에 따른 책임을 지우라는 한비자의 조언.


한비자가 살던 그 시절에도 무임승차(free riding)하는 권신(權臣)들이 많이 있었나 보다. 한 사장이 놓쳤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침묵하는 직원들에게 의견을 정확히 물어 보지 않는 리더. 다음 두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첫째, 조직원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좋지 않은 관행(분위기)이 생긴다.      


소송 중에 한 사장이 내게 자주 말했던 ‘특별히 이사들의 반대의견이 없었으니 당연히 저로서는 제 말에 찬성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라는 한 사장의 불만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리더가 의도하고 바라는 대로 목적지가 정해진 상황에서 임원들은 될 대로 되라지라는 무임승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조직원들의 침묵은 무임승차요 책임회피의 준비수순이었지 결코 긍정이 아니었다.      


둘째, 침묵한 조직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우며,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생긴다.      

침묵하는 조직원에게 당신의 의견은 어떠합니까?’라고 질문해서 그 의견을 들어봤다면 그가 나중에 ‘사실 제 속마음은 달랐단 말입니다’라는 식의 변명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소송과정에서 한 사장과 반대편에 섰던 이사들이 ‘제 의견이 어떤지 안 물어 보셨잖아요?’라고 항변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조직원이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그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그것이 리더의 자리다. 따라서 리더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이유를 직원의 성격 탓만으로는 돌릴 수 없다.


평소 리더의 제안에 반대의견을 내는 직원에게
리더가 어떤 식으로 대응했느냐가 직원들의 태도를 결정하게 만든다.      

리더의 제안에 반대의견을 내는 직원에게 리더가 자신의 혜안(惠安)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며 그를 설득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면 어느 직원이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리더에게 제시할 수 있을까?


직원된 입장에서는 업무의 향후 성패를 알 수 없을 때 변명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서 침묵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책임을 덜 지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모든 조직원들의 노력이 모여야 한다.      


하지만 조직원들이 ‘저 프로젝트는 리더가 꼭 하고 싶어서 추진한 거야’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그 프로젝트에 대해 속에 있는 진실한 의견을 드러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직원들의 다양한 지혜와 역량이 반영되지 못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조직원들은 결정에 참여하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나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조직에서 리더는, 자신이 제안하고 자신이 결정하며 자신이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는 대단히 불리한 악순환에 놓이게 된다. 정말 슬프지 않은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회의를 앞둔 리더라면 다음과 같은 행동방침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첫째, 논의 대상이 된 안건에 대해 긍정, 부정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개진해 줄 것을 요청한다.


오히려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사람(Devil’s Advocate)에 대해서는 더 고마운 마음을 가질 것이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둘째. 회의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안건에 대해 분명한 자기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다.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것은 책임전가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하면서. 가만히 웃고만 있는 조직원에게 젠틀하게 물어보자. “이 안건에 대해 의견은 어떤지요? 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죠.”     




물론 이런 행동방침에 더하여
평소에도 반대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졌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리라.

내 입장을 반대하는 직원에게 날을 세워 대응하지는 않고 있는지 돌아 볼 일이다.     


불통의 리더십으로 일방통행하는 리더가 있는 조직에서는 위기가 발생할 경우 조직원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리더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이것이야 말로 리더의 불통이 가져올 중요한 리스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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