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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Feb 03. 2016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어느 사장님

조우성 변호사의 한비자 리더십

▶ 생각의 테마     


제가 경영하는 회사는 개발파트 인력이 부족합니다. 요즘 개발자들을 고용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그런데 마침 실력있는 개발자들을 알게됐습니다. 이들은 팀을 이뤄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그들을 아예 저희 회사로 영입을 했습니다. 저희 회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 실제 그들이 일도 잘하더군요.

그런데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제가 개발쪽 지식이 없어 개발팀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있는데, 만에 하나 개발팀과 저희 회사가 틀어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개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제가 미주알 고주알 간섭하는 것은 효율상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회사가 성장하려면 다양한 전문가가 영입되어야 한다. 사장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전문 분야에 적합한 전문가를 영입하고 이들을 활용하는 것은 사장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직관리 역량이다.


하지만 전문분야를 전문가에게 맡긴다고 해서
조직을 장악하는 것울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권력을 가진 자는 계속 그 권력을 유지하고 나아가 더 강화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특히 그 전문분야가 회사의 핵심 역량(Core Value)과 직결된 부분일 경우, 사장이 이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다면 회사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A대 김 교수는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대기업을 상대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경영컨설턴트로서 이름이 높았다. 김 교수는 자신의 15년 컨설팅 노하우를 바탕으로 ‘기업의 조기경영 Risk 진단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기로 하고 R사를 설립한 뒤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김 교수는 리스크 진단프로그램을 개발할 개발자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적절한 개발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그는 카이스트 출신의 개발자를 소개받고 삼고초려하여 R사의 이사로 영입했는데, 그가 바로 민 이사다. 

민 이사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뛰어난 개발 실력과 다양한 실적을 갖고 있었다. 특히 김 교수는 민 이사가 R사의 서비스 모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민 이사는 김 교수가 희망하는 서비스 모델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여러 명의 숙련된 개발자가 필요한데, 이왕이면 민 이사와 코드가 맞는 후배 개발자들을 영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김 교수에게 제안했다. 하루라도 빨리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던 김 교수는 개발인력 충원에 대해서 민 이사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이에 민 이사는 자신의 후배 6명을 영입했다. 그리고 그 중 1명에 대해서는 특별한 예우가 필요하다고 김 교수를 설득했다(이미 실리콘 벨리의 스타트업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민 이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R사의 이사진은 김 교수, 민 이사, 민 이사의 후배인 최 이사,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되었다.     




민 이사는 후배들과 휴일도 없이 밤낮으로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6개월 만에 ‘조기경영 Risk 진단프로그램’ 구현을 완성했다.




한껏 고무된 김 교수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활발하게 마케팅을 벌여 10여개 기업에서 이 프로그램을 채택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처럼 회사에 좋은 일이 계속 생길 무렵 김 교수는 민 이사로부터 갑작스런 요구를 받게 됐다.     


"교수님, 오해 말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사업 핵심은 진단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 프로그램 알고리즘은 저와 제 후배들이 100% 개발한 셈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시장 상황에 맞추어 업데이트, 업그레이드 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나 제 후배들이 월급만 받는 것으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한 개발자 전원에게 회사 주식의 일부를 공로주 형태로 배분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 교수는 당황했다. 대체 어느 정도의 주식을 요구하는지 물어보았다.     


“저희들이 생각한 것은 30% 정도입니다. 어차피 조만간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으실 예정이시잖습니까? 그 전에 저희들이 주식을 갖고 있는 것이 교수님 우호지분 역할도 할 수 있고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만...”     


우호지분이라고?

김 교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사실 민 이사를 포함한 개발자들에게는 동종업계의 일반적인 기준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책정해서 지급하고 있었고, 개발 기간 동안 연구개발비. 복지비, 기타 관리비(회식비 포함) 등으로 이미 1억 원 이상을 지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프로그램 개발이 끝나자 이를 볼모로 잡고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회사의 지분을 주는 것은 경영권과 직결된 것이라서 김 교수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민 이사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네요. 그렇다면 저희들은 2가지로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사회를 소집해서 주주 제3자 배정을 통해 새로운 제3자로부터 투자를 받는 방안을 진행하거나 아니면 저를 포함한 개발자 전원이 회사를 나가는 수밖에요."     


주주 제3자 배정이라고?


김 교수는 개발자 출신인 민 이사가 전문적인 용어를 구사하자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변호사를 찾았다.     




김 교수는 변호사와 회의를 통해 민 이사가 주장하는 두 가지 방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이사회를 소집해서 주주 제3자 배정을 통해 새로운 제3자로부터 투자를 받는 방안.


이 의미는 현재 대주주인 김 교수에게 신주를 배정하지 않고 새로운 제3자(아마도 민 이사의 지지세력)에게만 배타적으로 신주를 배정함으로써 김 교수 지분을 감소시켜서 김 교수의 경영권을 약화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이같은 주주 제3자 배정은 정관에 주주 제3자 배정을 허용하는 규정이 있어야만 하는데, 불행히도 R사 정관에는 그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주 제3자 배정은 '이사회 결의'로 가능한데, 현재 R사의 이사 3명 중 2명이 '민이사와 그의 후배 최 이사'이므로 이 두 사람이 찬성표를 던지면 이사회 내 과반수가 되어 얼마든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김 교수가 대표이사이긴 하지만 대표이사라고 해도 이사회에서 표결할 때는 1표밖에 행사할 수 없다. 

아무래도 민 이사는 외부 법률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는 듯 했다. 

결국 민 이사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자금주(資金主)를 끌어들여 R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다음으로, 개발자 전원이 회사를 나가겠다는 제안 역시 그 배경을 살펴보면 지극히 불순했다.


현재 진단 프로그램 자체는 완성되어 있지만, 개발에 관한 모든 자료는 민 이사측이 갖고 있으므로, 민 이사를 포함한 개발자들이 모두 회사를 나가버렸을 때 김 교수가 다른 개발자를 투입시켜 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더욱이 김 교수가 열심히 마케팅을 해서 바로 다음달부터 여러 기업을 대상으로 이 프로그램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만약 개발자들이 다 나가버리면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계약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민 이사는 절묘하게 함정을 파놓고 김 교수를 압박한 것이다.


김 교수와 변호사는 여러 가지 공격, 방어 방법을 고민해봤지만 민 이사가 이사회 과반수를 장악하고 있으며, 프로그램 개발관련 모든 자료를 갖고 있다는 점이 김 교수에게는 커다란 약점이 되었다. 김 교수는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했다.      




김 교수는 사장이었지만 어느 순간 회사에 대한 장악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조직의 장악을 항상 강조한 한비자. 그는 이런 사태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줄까?     


한비자는 그의 저서 <주도편>에서, 군주가 권력을 상실하는 다섯 가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

둘째, 신하가 나라의 재정을 장악하는 것,

셋째, 신하가 군주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는 것

넷째, 신하가 마음대로 상벌권을 행사하는 것

다섯째, 신하가 개인적으로 작당하는 것이다.        


신하가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면 군주는 그 지위를 잃게 되고,

신하가 나라의 재정을 장악하면 군주는 은덕을 베풀 수 없게 되며, 

신하가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고 상벌권을 행사하면 군주는 행정의 통제력을 잃게 되고,

신하가 사적으로 패거리를 이루면 군주는 자신을 편들 무리를 잃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군주 한 사람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신하된 자가 잡아서는 안 된다.”




공교롭게도 김 교수의 경우는 한비자가 우려한 위 5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됐다. 


김 교수가 R사의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였고, 민 이사는 단지 프로그램 개발을 책임지는 임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직원 대다수를 민이사의 후배로 채웠고, 모든 경비 지출은 '실제는 김 교수의 부담으로' 이루어지면서도 민 이사가 전권을 가지고 집행했으며, 직원들에 대한 통제권 역시 김 교수가 아닌 민 이사가 장악했다. 


결과적으로 김 교수는 자금을 대주는 전주(錢主)에 불과했던 반면, 민 이사는 실질적인 사장으로서 행세를 했던 것이다. 이미 민 이사의 통제권 하에 있던 다른 임직원들은 민 이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비자는 모름지기 군주라면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신하나 백성들이 자신을 감히 넘보지 못할 위엄과 권위를 확보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한 위엄과 권위는 군주라는 자리에서 나오는 힘에 근거한다고 보았다.     


"한 자 길이의 나무라도 높은 산 위에 세우면 천 길이나 되는 깊은 골짜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것은 나무가 길어서가 아니라 그 위치가 높기 때문이다. 


걸(傑)이 천자가 되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명해서가 아니라 강한 권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요(堯)가 필부였다면 세 집안도 다스릴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지위가 낮기 때문이었다. 


짧은 것이 높은 데서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위치 때문이며,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자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勢) 때문이다"


위 내용을 대입해 보면 김 교수는 자신의 비용과 부담으로 민 이사를 높은 산 위에 올려 놓은 것이다. 김 교수에 의해 높은 산 위에 올려진 민 이사는 자신의 위치와 권세를 이용하여 오히려 김 교수를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김 교수로서는 얼마나 분통터지는 노릇일까.     


한비자는 군주가 자신의 권세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경우, 반드시 권신(權臣)들이 그 권한을 빼앗기 위해 작당을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점에서 한비자가 바라보는 인간관은 대단히 비관적이다.     


한비자의 이러한 비관적 인간관에 여러분은 선뜻 동의할 수 있는가?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고 반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비자가 전제한 인간의 모습은 성인(聖人)이 아닌 가능하면 좀 더 편해지고 가능하면 좀 더 자기 것을 챙기고 싶어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 볼 때 한비자의 우려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아울러 한비자는 권한이 군주 외의 신하 1인에게 집중되는 것이 위험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은 예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제(齊) 환공(桓公)이 장차 관중(管仲)을 중부(仲父)로 삼으려 했다. 


환공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내가 앞으로 관중을 세워 중부라 부르겠다. 이에 찬성하는 자는 문으로 들어와서 왼쪽으로 서고, 이에 반대하는 자는 문으로 들어와서 오른쪽에 서라’고 하였다.

그런데 동곽아(東郭牙)는 가운데 문으로 들어와서 중간에 섰다.

환공이 말하기를 ‘내가 앞으로 관중을 세워 중부로 삼아도 좋다고 보는 자는 왼쪽에 서고 좋지 않다고 보는 자는 오른쪽에 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 자네는 무엇 때문에 문 가운데 서 있는가’라고 물었다.

동곽아는 환공에게 ‘관중의 지혜로 능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환공이 말하기를 ‘능히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관중의 결단력을 가지고 감히 대사를 결행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환공이 말하기를 ‘감히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동곽아가 말하기를 ‘만약 지혜가 능히 천하를 도모할 수 있고 결단력이 감히 대사를 결행할 수 있으며 군주께서 또 국가 권력을 온통 그에게 맡기신다면 관중의 능력으로 공(公)의 위세를 등에 업고 제나라를 다스리게 되는데 위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환공이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다’고 하였다.

결국 환공은 습붕을 시켜 나라 안을 다스리게 하고 관중으로 하여금 나라 밖을 다스려서 상호 견제하게 하였다.     


동곽아가 이런 경고를 한 이유는, 권한을 독점하게 된 관중이 그 권한을 남용하게 될 경우를 걱정한 측면도 있겠지만, 설사 관중의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변함없다 하더라도 수많은 신하와 백성들은 권한이 집중된 관중의 일거수 일투족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관중의 본의와는 달리 권력의 지형도(地形圖)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군주에게 인식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R사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김 대표는 민 이사측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R사 주식의 30%를 넘겨 주었고, 그 이후 불편한 동거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민 이사는 이제 확실하게 R사의 2대주주로 자리매김했으며, 그 후배들이 이미 핵심임직원으로서 위치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김 교수는 대표이사라는 직함만 갖고 있을 뿐, 회사의 경영에는 별다른 관여를 하지 못하며, 계속 대외적인 영업만 하고 있는, 마케팅 본부장 같은 지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 대표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대표이사 및 대주주로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 민이사의 말만 믿고 일을 진행한 결과 이런 황당한 결과를 맞게 된 것이다.           


사장은 어떤 경우에라도 회사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러한 힘은 결코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사장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사장의 장악력이 침탈되거나 누수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미 잃어버린 장악력을 다시 회복하기란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특히 회사의 중요 결정이 이사회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장이 이사회를 수적(數的)으로 장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위 사례처럼 회사의 핵심이 되는 분야(프로그램 개발)에 대해서는 민 이사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사장이 어떤 식으로든 보고를 받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김 교수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CTO로 영입해서 민 이사를 관리하게 하거나 적어도 대등한 구조로 만드는 것도 필요했다.     


권력의 원천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를 어떻게 행사하고 관리하느냐 따라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을 아랫사람에게 충분히 뺏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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