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창원에 다녀왔다. 하루 종일 아주 복잡한 뭔가를 한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한 일이 전혀 없는 느낌이다. 봄밤의 시간은 가끔씩 느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느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봄 밤의 시간 그 아래로 흐르는 또 하나는, 문득 다가오는 생경함이다. 살아온 모든 날들이 송두리 채 생경해지는 봄밤이다. 생경함과 조심스러움은 한 켤레다. 조심스러움에서 유추되는 것은 미지의 세계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타파하는 것은 앞서서 나아가는 것이다.
앞서서 적의 형편·지형 등을 정찰하고 탐색 것을 斥候라 부른다. 척후와 비슷한 말이 전위다.
前衛라는 용어는 프랑스어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번역한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군사용어로, 전쟁에서 본대에 앞서 적진의 선두에 나가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척후병을 뜻한다. 아방가르드라는 용어가 예술에 전용(轉用)되어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예술을 탐색하고 이제까지의 예술 개념을 일변시킬 수 있는 혁명적인 예술경향이다.
중세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예술은 종교적 관점에서 성립되고 또 발전하였다. 하지만 종교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예술은 부르주아의 전유물이 되었고 장식적이고 충실한 현상의 재현과 묘사적인 테크닉에 따라 예술의 가치를 평가했다. 하지만 사진이 등장하면서 재현에 목숨을 걸었던 회화는 길을 잃었고, 축음기가 발명되면서 음악도 거대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틀을 부정하고 그러한 기준이 지배해온 숨 막히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바로 아방가르드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운동과 스위스의 다다이즘 등은 예술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시대적 척후병으로서 기존의 틀에 박힌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런 분위기에 충분히 고무되었던 프랑스의 유명한 아방가르드 음악가 에릭 사티는 시대를 앞서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 활동한 후기 낭만주의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구스타프 말러, 그의 동료였던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 음악과는 너무나 다른 음악을 만들었던 사티는 오히려 대중을 위해 예술적 영감을 불태웠으나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아이러니의 희생자가 되었다.
짐노페디는 원래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의 축제의 이름이다. 1888년에 작곡되었으며 사티가 자주 가던 몽마르트르의 카바레에서 연주했던 곡으로서 사티는 자기의 동료인 시인 라뚜르(J. P. Contamine de Latour)의 시『오래된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
그림은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 Gino Severini 'Memories of a Journey'(1911)
https://www.youtube.com/watch?v=FS6o3qFim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