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得已

by 김준식

不得已(부득이)란 무엇일까? 得은 얻음이다. 앞에 不가 있으니 부정의 의미, 즉 ‘얻지 못했다’로 해석된다. 문제는 已다. 한자 ‘已’는 ‘이미’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치다' 또는 '그만두다'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얻지 못하여 그만두다', 혹은 '얻을 수 없으니 그친 상태'를 ‘부득이’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마지못하여하는 수 없이’로 풀이하는데, 확장시켜 보면 크게 다른 뜻은 아니다. 하지만 세밀하게 보자면 話者의 의지는 배제하고 일반화시킨 느낌이 있다.


『장자』 ‘제물론’에 따르면 “通也者, 得也, 즉 통함은 얻음이다.”라고 했다. ‘제물론’에 따라 무엇인가를 '얻는다(得)'는 것은 무엇인가와 통하였을 때를 말한다면 “不得已”는 통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통하는 것 만이 최선은 아니다. 통한다는 것은 ‘道’의 경지가 아니라 일종의 기능적 측면을 말할 뿐이다. 동시에 이런 기능적 연결(通)은 대부분 더 많은 연결이 필요해 지기 때문에 장자가 이야기하는 ‘心齋(심재), 즉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방해하여 엉뚱한 집착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장자’라는 실존의 인물이 생존했던 당시, 전국시대의 통할 수 없는 현실을 장자는 스스로 ‘부득이’로 표현한다. 하지만 살아 있기 때문에 하는 필수 불가결한 행동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남을 부리거나 또는 남에게 부림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이런 관계의 연속이다. 공간은 반드시 나누어지고, 관계는 복잡해져서 지극함에 이르기 어려워진다.(‘장자’는 倫, 義, 分, 辯, 競 爭으로 이 상황을 표현한다.)


2021년 3월 18일, 아침 뉴스의 세상은 엄청난 일들의 연속이다. 분열되고 복잡한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과연 안전하고 평안해질 수 있는가? ‘장자’가 살던 그 시대가 사나운 군주의 신하로서 자칫 마음을 비우지 않는 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시대였다면,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공간은 더욱 세밀하게 분열되고 관계는 더 복잡하게 얽혀서 ‘부득이’는 갈수록 많아지는 현실이다. 어쩌면 ‘장자’가 살았던 시기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함이 매일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장자’는 의외의 해결책을 내놓는다. 『장자』 庚桑楚(경상초)에서,

有爲也欲當(유위야욕당) : 그의 행동이 합당하게 되고 싶으면

則緣於不得已(칙연어부득이) : 자연에 따라 '부득이'하게 행동해야 한다.

不得已之類(부득이지류) : 자연에 따라 '부득이'하게 행동하는 것이

聖人之道(성인지도) : 성인의 '도'다.


뭔가? 갑자기 ‘부득이’의 상황에 머물라는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부득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해 온 우리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부득이’의 뜻을 새겨보자. ‘얻지 못하니 그만둔다’로 새겨 보면 ‘장자’의 이 말이 희미하게 이해되기도 한다. 즉, 얻으려 애쓰는 것이 오히려 모든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함의가 있다. 하지만 무조건 불완전하게 내버려 둔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무리하게 얻으려 함으로 나와 타인의 삶에 커다란 위험을 줄 우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서 ‘장자’가 나름대로 고안해 낸 생존의 방법이거나 혹은 삶의 여유를 나타낸 말이다. “부득이”!!!


뭔가를 얻기 위해 또는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애쓰는 것은 오히려 타인이나 또는 나에게 위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오히려 ‘부득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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