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이 나라 권력기관 중 하나인 어떤 기관의 장이 그 직을 물러나면서 기자들 앞에서 말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이 아침 문득 생각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붙어 있는 이 말은 의미상으로만 본다면 모순점이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으로서 이 말의 핵심은 경제적 자유, 즉 소유권과 과실 책임주의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물론 정치적 자유도 당연히 있지만 그 기초는 분명하게 경제적 자유이다. 이를테면 내가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내 재산과 내 소유는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자본가들의 보호 논리에 가깝다.
그런가 하면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정치이념으로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다수에 의한 통제를 기초로 한다. 민주주의는 개인보다는 집단에 초점을 두어서 절대적 소유권이라 하더라도 집단의 이익에 반하면 일부 제한될 수 있고, 개인의 행동은 집단에 대하여 과실책임을 넘어 무과실 책임까지도 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단어를 붙여서 ‘자유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면 무엇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가 다시 문제가 된다. 자유에 방점이 있으면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할 것이고 민주에 방점이 있으면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자유가 단어의 처음에 와 있기 때문에 자유에 방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온 나라가 땅 투기의 대상이 된지는 이미 오래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헌법적 기초인 ‘시장경제’의 큰 원칙에 따라 개인의 소유권에 바탕을 둔 토지 매매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러나 땅 투기를 하는 자들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그것을 직무로 삼는 공무원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공무원은 이런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원칙을 어기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신출귀몰하고 가족과 차명, 심지어 차 차명이 이르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알고 있어도 잡아낼 방법이 없다. 법도 미치지 못하는 신묘한 방법으로 땅 투기를 해서 재산을 축적하는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 의원,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와 같이 이 나라에 잘 살고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이런 뉴스를 보고 느끼는 분노나 박탈감의 원인은 그런 판에 끼지 못한 것이 억울해서 생기는 감정일 것이라고.....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해방공간에서 북한 지역에 있었던 토지 몰수(1946년 3월 5일 소위 "무상몰수·무상분배"를 통해서 토지개혁)에 저항(?)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무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자유’는 바로 2021년 이런 대한민국을 만든 근본 이념이 되고 말았다. 이들이 정치세력화되고 이승만과 제휴하면서 이 나라의 엉터리 보수가 탄생했고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대대손손 정치와 유착하며 권력을 유지하고 부를 축적해왔다. 이 사람들이 틈날 때마다 그렇게 ‘자유’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더불어 퇴직하면서 기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한 그 형편없는 저의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이 땅 곳곳에 피는 저 작은 꽃에게 참 미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