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by 김준식

1. 윌리엄 오브 오캄, 그리고 한국 정치


윌리엄 오브 오캄은 둔스 스코투스의 뒤를 잇는 프란체스코 학파의 학자로서 스코투스보다 더 유의주의의 철저화를 시도한 인물이다.


그는 지식과 신앙, 학문과 종교를 철저히 분리하고 신앙과 실정법 또한 분리했다. 그 결과 그의 법사상은 법실증주의, 도덕 실증주의의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고, 극단적인 유의주의 유명론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의 극단적인 유의주의 유명론은 ‘보편(일반 의지 - 종교적이거나 또는 도덕적인 절대적 善)은 명칭이며, 사물 다음에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밝혀진다. 이 말은 중세 기독교의 몰락을 가져온 획기적인 사상의 근원이 된다.


기준과 그 기준에 대한 비판이 모호해진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제 오캄의 말처럼 ‘보편’은 사라지고 ‘사물’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사물’은 ‘자본’, ‘권력’, ‘단순함’, ‘수용’, ‘도외시’로 치환될 수 있다.


2. 유의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관념론적 철학의 세계관으로서, 의지라는 정신적 작용이 세계의 근본적인 원리이며 이것으로 세계가 만들어지고 이로부터 만물이 나타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는 의지를 비합리적·맹목적으로 발동한다고 보는 것과(개괄적 의지론) 의지는 일정한 목적 아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고 보는(합목적적 의지론) 두 견해가 있다.


21세기 세계관의 기준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몰가치성(Wertfreiheit)이다. 즉,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에만 충실하면 되는 이 견해는 확실히 개괄적이며 맹목적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과 국민 정서를 보라.(자본과 관련된 것에 쏟아지는 극단적인 관심 즉, 토지, 주식으로 대표되는) 13세기 중세의 오캄이 살았던 세계는 부패하고 타락한 기독교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대단히 정교해지고 동시에 괴물이 된 자본주의가 있다.


3. Ockham's Razor (오캄의 면도날), 한국 정치, 우리의 정치적 삶에 대한 대안 혹은 전망


‘불필요하게 복잡한 언명(言明)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plurality should not be posited without necessity).’


다른 조건이 같다면 진리는 단순한 쪽에 있다. 세상은 복잡해지지만(즉 잡다한 이익집단이 修辭, 공허한 개념, 과장된 이유 등은 오히려 왜곡된 논리를 만들어 낸다) 진리는 필연성 없이 증폭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오캄에 의하면, 신의 개념은 명백한 경험이나 명백한 추론에 기초한 것이 아닌 전부 계시(啓示)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의 근거는 신앙에 있다.


당시의 모든 분위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사유의 출발점이자 목표로 삼았는데, 오캄은 논리적 사유를 극단에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스콜라 철학의 주요한 견해인 실재론적 전통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하여 당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신학사상과 대결하게 된다. 그것이 ‘보편(Universals) 논쟁’, 다시 말해 ‘실재론’과 ‘유명론’의 결투로 나타났다. 주류 스콜라철학이 ‘보편(Universals)’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을 폈던 것과 달리 오캄은 보편이라는 것은 이름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유명론을 편 것이다.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 끝없이 비판을 가하며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던, 혹은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찌그러져 자본의 노예로 살던 그것은 명백히 개인의 자유이자 권리다. 그러니 복잡하게 말하지 말자. 전자라면 이 모든 현실에 대해 냉정하고 날카롭게 대안을 생각하며 몸으로 움직이기 위해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어야 한다. 그뿐이다.


그림은 16세기 화가 Lucas van Valckenborch 'La Tour de Babel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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