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가르침

by 김준식

배움과 가르침


ON HUMAN NATURE(인간 본성에 대하여), ANT HILL(개미 언덕) 등의 책을 저술한 애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 1929 ~)이 그의 책에서 사용한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초대 국립생태원장이 된 최재천 교수가 ‘통섭’이라는 말로 번역하면서 우리 사회에 ‘통섭’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Consilience’는 라틴어에서 유래하는데 ‘Consiliere’(英, jumping together, 함께 이리저리 뜀, 즉 이곳과 저곳을 자유롭게 넘나듦.)을 뜻하는 단어가 이 단어의 어원이다.


우리말로 옮긴 統攝(통섭)은 한자어로서 뜻은 비슷하지만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다. 統은 ‘합치다’라는 뜻이 있고 攝은 ‘당기다’ ‘거느리다’의 뜻이 강하다. 두 글자를 합하여 해석해보면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것들을 당겨(끌어)서 한 곳으로 합치다”라는 말로 풀이된다.


따라서 통섭이란 여러 가지 학문을, 필요(학문적 활용을 위한 필요)에 따라 한 곳으로 불러오고 그것을 재편하여 그로부터 현상을 해석하고 분석하여 다시금 현상에 적용시키는 과정에 필요한 학문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하나의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한 사실은 참으로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중, 고 교사는 자신의 과목 영역을 벗어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가능한 과목 경계를 엄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른 교과 과목 선생님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의 극단적인 경우는 대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전공을 넘어서는 이야기는 거의 금기시할 정도로 자제하고 조심하는 분위기다. 가끔 이런 분위기로 하여 폐쇄적인 학문의 경향이 생기기도 한다.


중학생들에게 철학을 수업하는 나로서는 철학적인 개별 명제에 포함된 하나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엄청난 부가 개념을 가르치는 일이 많다. 철학 용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상에 자주 쓰이는 단어들 조차도 중학생들에게는 생소한 경우가 많다. 철학적 명제에 포함된 단어의 개념 하나하나마다 부가되는 하위의 작은 개념들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파생되어 가끔은 본래 우리가 알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는 경우조차 생기게 된다.


어찌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교사마다 답이 다르고 학자마다 주장이 다르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즉 다양한 지식을 통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통섭의 상황으로 아이들을 데려갈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지난 30여 년의 교사 시절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찾고 있는 중이며 어쩌면 내 퇴직하는 그날까지 찾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방법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자주 대화해야 한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통섭의 기초는 가정교육이다. 학교는 가정에서 길러진 아이들을 다니는 곳이다. 가정이 역할을 다 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그것이 심화되면 가끔은 어른 세계에 대한 거부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가정의 중요함이 여기에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가정 해체와 부모와의 대화 부족은 아이들의 기초적 언어구사능력과 이해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물론 학교 교육이 이 빈틈을 채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을 아직도 멀다. 마음이 바빠진다. 스스로의 교직생활을 돌아보고 지금까지 해 온 교수방법과 그 배경이 되는 학문에 대하여 비교적 깊이 있는 고찰을 진행하여도 산출물은 거의 없거나 아니면 유용하지 못하다. 상황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데 이리저리 방황을 거듭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는 내가 참으로 안타깝다.


http://www.dand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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