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육

棟梁(동량), 柱梁(주량), 人材(인재)

by 김준식


1. 도구인가?


동, 서양을 막론하고 왕조 시대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철저한 신분제도였다. 이를테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신분이라는 굴레를 통해 왕권의 엄격함을 알리는 동시에 태어나는 순간 부여된 자신의 신분에 맞는 직분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와 신념을 심어주었다. 일종의 집단 최면 같은 것이었다.


신분제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력양성 제도다. 즉 왕과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동시에 하층 계급에게 모범이 되는 하나의 典型(전형)이 되는 집단이나 인물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왕과 국가를 위해 충성하였고 반대급부로 왕과 국가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특혜를 부여하였다. 그 시혜를 받은 특정인 혹은 집단에 의해 국가나 왕조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 특정 집단 내부에서도 리더 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동양에서는 ‘동량’이니 ‘주량’이니 혹은 ‘인재’ 등으로 불렀다. 놀랍게도 21세기 민주시민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이 단어들은 여전히 아주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많은 초, 중등학교의 중앙현관 또는 교장실에 걸려있는 학교 교육목표를 보면 “~인재”를 키워내겠다고 제시해 놓고 있다. 그나마 상급기관의 정책이나 목표에서는 이제 이런 표현이 거의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부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자주 감지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조 시대의 구조를 그대로 이은 것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바탕은 산업이다. 즉 생산과 판매를 통한 부의 축적이 그 바탕인데 생산을 증대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과제였고 왕조 시대의 인재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능력으로 생산 증대에 획기적으로 공헌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로 자본을 가지게 되었다.


왕이 사라진 국가는 이들을 그대로 이용하여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로 바꾸고 그들에게 elite(엘리트)라는 새로운 신분을 제공한다. ‘인재’나 ‘동량’이 ‘엘리트’로 이름만 바뀐 것이다.


인재의 ‘材’는 재료를 의미한다. 재료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도구에 가깝다. 왕조를 유지하고 국가 생산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인적 도구들이 인재인 것이다. 반드시 필요하고 또 그 역할의 중요성은 21세기에도 변함이 없다.


오래전부터 교육은 이들을 키워내는 것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孟子 盡心章句에 군자삼락 마지막으로 ‘得天下英才而敎育’(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2300년이 넘은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나는 자주 본다. 참고로 영재를 英譯하면 “most talented individuals”(가장 뛰어난 능력이 있는 개인들 - 옥스퍼드 사전 참조)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이 사람을 도구로 보는 것인가?


2. 그러면?


이러한 흐름에 대한 반성들이 생겨난 곳은 서양이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동양의 인재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 그렇다고 서양의 인재 개념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도 여전히 인재라는 말에 공명한다. 문제는 학교 교육에서 작동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서양은 표면적으로는 거의, 가끔은 내부적으로도 전통적인 인재 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들의 교육목표는 이미 ‘평범’을 향해 가고 있다.


어제 KDI에서 주최한 학교 관리자 연수가 있었다. 그런데 연수 제목이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학교 관리자 경제 연수”였다. KDI(한국 개발 연구원)는 자칭 타칭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싱크탱크다. 그곳에서 아직도 학교를 인재 육성(국가 발전의 도구를 키워내는)의 장소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현재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복 교육’ ‘혁신 교육’은 거의 무용하다. 소수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라면 지금의 방식보다는 경쟁이 더 효과적이다. 강의 한 꼭지를 담당한 전 교육부 장관의 강의는 조금 난감했다.(그 양반의 생각 전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일부 앞 뒤가 틀린 이야기가 있었다.) 강의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미래 인재를 키우는데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교육 방식을 수직적(vertical) 교육에서 수평적(horizontal)로 바꾸자는 이야기를 강의 중에 한다. 인재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수직적인 위계구조에서만 가능한 일인데 거기에 수평적인 방식의 이야기가 나오니 어찌 이해를 해야 할까?


나름 석학이며 한 나라의 장관이었으니 자부심이 대단할 것 같아 질문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불쾌했다. 아니 내내 불쾌하고 또 찜찜했다. 교육부의 수장을 하신 양반이 틀이 다른 두 개의 논지를 억지로 조합하려는 것은 우리를 무시하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저렇게 엮어가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3. 행복한 삶


2019년 내가 정한 우리 학교의 교육목표는 ‘행복한 삶을 가꾸는 교육’이다. 인재를 키워내야 하는 부담감을 가볍게 저버렸다. 여러 가지 공격도 있다. 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21세기 중반을 살아갈 우리 학교 아이들의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학교 교육의 핵심 중 하나인 지식 교육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역시 동시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교육을 위해 우리는 철학 교육을 한다. 먼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또 타인을 자신의 기준으로 보지 않아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것을 이해하려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중학생 단계에서 이런 생각을 시작해 보는 것은 앞으로의 일생에 매우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 작은 것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나와 우리,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어려움이 많지만 ‘동량’이니 ‘주량’이니 ‘인재’니 하는 말이 의미 없어지는 세상, 즉 사람이 도구로 쓰이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오늘 아침 뉴스에도 한 때 자신의 집단에서 인재로 불렸던 이들의 부패와 부정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분명히 2022년 새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다. 불행하지만 현실이다. 그러고 보니 저들은 人材가 아니라 人災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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