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이 고민과 논의는 2월 애매한 시기에 학교 운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여러 선후배 선생님들의 노력에 대한 평가나 시비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과 반성에 기초를 두고 쓴다는 것을 밝힘. 하지만 문맥상 또는 글의 뉘앙스로 짐작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는 것에 충분한 책임을 감수할 것임.
2월은 학기 종료의 달이다. 교육기관만의 아주 독특한 관습이다. 모든 일이 해를 걸쳐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상 혼선과 혼란이 조금은 있다. 물론 모든 교육기관의 구성원들이 학교를 다녔고 또 그 제도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는 이미 몸속에 스며들어 불편의 강도는 조금 덜한 편이다. 이 시기에는 공립학교인 경우 인사이동이 있다. 동시에 학교 내부에서도 각자 맡은 바 역할에 대한 변화가 있다. 즉 3월 신학기를 위해 새로운 임무와 역할이 주어지고 자리를 옮기고 책상을 정리하는 시기다.
최근 여러 학교에서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시도하여 통상 2월에 있어왔던 졸업식이나 종업식을 1월에 마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2월은 졸업과 종업이 있고 이동이 있으며 내부적 변화가 있는 약간은 어수선한 달이 분명하다.
이 시기를 교육과정 구성 주간으로 설정한 것은 정확히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를 이용하여 신학기를 위한 학교 구성원 간의 의견조정 기간으로 설정하는 것에는 별 다른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필요한 절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학교 내부의 업무 조정(소위 업무분장)을 위해 선생님들을 모아 놓고 업무 분장 외의 연수나 강좌를 개설하는 것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다. 학교 경영을 담당하고 계시는 교장 선생님들의 의견이기도 하고 때로는 구성원 들의 생각이기도 하겠지만 이 시기의 선생님들에게 특별한 강의를 해서 거둘 수 있는 효과는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어떤 연수나 어떤 강의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기의 선생님들은 마음이 복잡하다. 이동해 온 학교와 새로 맡은 임무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무엇인가 강좌나 연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21세기 지구 상의 수많은 인지심리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정설이다. 즉 하나의 과업을 하면서 또 다른 과업을 수행하는 일은 인간의 뇌 구조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학교의 이동, 업무의 변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선생님들의 상황에서 또 다른 지식이나 방법적 연수는 어쩌면 모양내기나 구색 갖추기의 역할 외에는 선생님들의 심리를 더 괴롭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업무의 이동에 대한 동료 교사들과의 소통, 학교 이동을 하신 선생님들에 대한 학교장 혹은 동료 교사들과의 소통 정도가 이 시기의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여겨지는데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주변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수 등은 누굴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포스트잇으로 대표되는 개인 의사의 표현이 학교 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게 된 기초는 포스트잇이 가지는 익명성이다. 이를테면(권위주의의 소산으로 보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사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교사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포스트잇이었다.
학교 업무 분장을 포스트잇을 이용하여 조정하는 장면을 SNS에서 혹은 실제로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민주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이 민주적이라는 상황에 의심이 간다. 과연 민주적인가? 특정 업무를 폐지하거나 특정 업무를 신설하자는 이야기부터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매우 민주적인 방법이 분명하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공립학교가 가지고 있는 특수한 한계, 즉 승진구조 앞에서 이 포스트잇으로 대변되는 소위 민주적 상황은 서로 엇박자를 낼 수 있다. 승진구조는 필연적으로 점수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 업무의 경중이나 과다는 당연히 이 점수와 연결된다.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우리 학교는 이 승진구조에서 참으로 자유로웠다. 그래서 비교적 민주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설령 포스트잇으로 완성된 업무분장이라 하더라도 인사위원회라는 과정을 거치면 민주적 절차는 가끔씩 폐기될 때도 있다. 이른바 승진을 위한 밀어주기와 몰아주기가 이 판을 깬다. 이것도 현실이다. 아닐 수도 있다. 절차는 민주적이었으나 결론은 비민주적이 되고 마는 상황을 가끔씩 듣고 보기도 한다. 여기에 또 다른 변인은 교사의 나이와 성별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학맥과 지연까지 개입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민주적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포스트잇이라는 과정으로 진행된 것만 해도 엄청난 민주화요 발전이다. 하지만 늘 객관적 사실은 이중적 구조를 가진다. 민주화라고 보이는 과정의 이면에 도사린 지극히 비민주적인 구조를 한 번쯤 되짚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