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 수업(52)

by 김준식

어제 철학 수업은 반성 수목원 길을 걷는 것이었다. 그 어떤 위대한 철학적 논의도 자연 앞에서는 거의 무용해진다. 살아온 모든 날들을 돌이켜 자연 만큼 거대한, 그리고 압도적인 스승은 없었다.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걷게 할 목적이 그 첫 번째였고, 동시에 걸으면서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것이 그 두 번째 목적이었다. 그러나 사실 두 번째 목적은 매우 형식적인 것이리라.


정확하게는 경남도립수목원인 반성수목원은 이미 가을을 넘기고 있었다. 지난주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면 더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아서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스스로 느끼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청소년기에 거의 느끼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청소년기에는 스스로 생동하는 몸과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외부의 상황에 눈 돌리기 어렵다. 하여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자연은 더 생생해지고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우리 아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풍경’이라는 말이 있다. ‘風景’이라는 단어를 漢字 그대로 풀이하면 ‘바람’과 ‘햇볕’이 된다. 바람이라 함은 펼쳐진 광경, 즉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수평적 상황을 말함이고(따라서 바람에는 늘 방향이 있다.) 햇볕은 당연히 그 반대쪽에 있는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그리고 땅에서 솟구치는 그 모든 것을 대표하는 글자라고 볼 수 있다. (당연한 이유로 햇볕에는 상, 하만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방향을 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風景이라 함은 우리가 보는 공간의 모든 수평적인 것(높 낮이는 있지만)과 동시에 그 공간에서 변화하고 있는 수직적인 모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시각은 수평적 상황(風)과 수직적 상황(景)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늘 감동하게 된다. 사실 시각만큼 속기 쉽고 가벼운 감각도 없다. 하지만 시각만큼 직접적이고 강력한 것도 없다. 가을날 수평의 땅 위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낙엽에서, 봄날 수평의 땅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르는 새싹에서, 거대한 수평의 바다에서 수직으로 튀어 오르는 파도에서, 고요한 수평의 산줄기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에서 감동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는 것, 그리고 분수가 솟구치는 것 등은 이런 예의 대표적인 경우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잠시 했지만 아이들이 들을 리 만무하다. 아마 한 명도 듣지 않는 눈치였지만 뭐 어떤가? 자연이 그 모든 것을 대신하는데……

오늘 철학 수업이 올 일 년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말이 필요 없는 공부, 가슴으로 다가오는 공부, 머리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온몸으로 이해되는 위대한 자연을 우리는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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