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업의 주제는 헤겔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자면 헤겔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되는데 이 헤겔이라는 양반이 예사롭지 않다. 나에게도 산처럼 느껴지는 것은 물론, 아마도 철학을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겔이라는 산 앞에서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수 있다.
어쨌거나 아이들에게 헤겔이라는 거대한 산 이야기를 하자니 막막하다. 하지만 철학이란 누구나 알 수 있는 현상에 기초한다는 대 전제를 믿고 이야기를 꺼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독일의 관념론에 맞닿아 있다. 아니 어쩌면 관념론은 그 뿌리에 가깝다. 그러면 관념론은 무엇인가? 관념론을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알 수 있는 實體(실체 - 사실 이 실체 이야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스피노자 이야기는 또 어찌할 것인가? 오늘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으로 구성되었거나 혹은 비 물질적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내가 보고 있는 사물(예를 들어 연필을 보고 있다.)은 내 머릿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모든 감각과 지식에 의해 이미 판단된 ‘연필’이라는 것으로서 이러한 나의 선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은 ‘연필’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보고 있는 나무와 흑연으로 구성된 실체인 ‘연필’은 사실 정신적 구성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랬을 때 비로소 '연필'로 존재한다는 다소 뚱딴지같은 설명이, 지극히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관념론이다. 아이들은 어리둥절!
사실 헤겔의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은 매우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칸트나 피히테, 그리고 셀링의 이야기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저 유명한 변증법은 피히테로부터 가져왔고(물론 이것 또한 오류가 있지만) 셀링으로부터는 절대자 개념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헤겔은 7단계로 나누어서 감각과 주관, 그리고 객관과 절대정신을 이야기했다. 헤겔은 인간 인식의 발전 단계를 감각 – 지각 – 오성 – 자기의식 - 이성(여기 까지를 주관 정신으로 분류) 그다음으로 정신(이것을 헤겔은 객관 정신으로 분류) 그다음으로 절대지(이것을 절대정신으로 분류)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헤겔은 주인과 노예 이야기를 통해 ‘자유’를 언급한다. 이 주인과 노예 이야기 이전에 승자와 패자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에 인정투쟁 이야기도 등장한다. 두 이야기 모두 매우 복잡한 논리구조를 가지는데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승자와 패자의 인정투쟁 이야기 모두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뜨악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주인과 노예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자유’는 우리가 배웠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 중에 무엇인가?
단순한 문제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단순화시켜보면 “인간의 역사는 자유의 전개 그 자체”라고 이야기한 헤겔의 ‘자유’는 두 개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 자유일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 표정이 가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