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육

순응

깨어있기

by 김준식


순행하는 질서를 거스르기 위해서는, 즉 역행하기 위해서는 순행의 에너지보다 더 크고 압도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순행이란 단어에 포함된 이미지는 다분히 안정과 조화로움이다. 반면 역행이라는 단어 밑으로 흐르는 이미지는 혼란과 무질서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오래도록 체제 순응 교육을 받아 온 우리 대부분은 안정과 조화라는 단어에 더 마음이 간다. 이것이 교육이 가지는 무서운 힘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 인간의 역사는 결코 순행의 역사가 아니다. 순행의 안정과 조화로움은 곧 부패와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부패와 독선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역행의 에너지가 필수적인데 우리 교육은 역행의 이미지 속에 혼란과 무질서를 교묘하게 섞어놓았다.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이러한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또 여전히 지금도 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이 나라의 부패와 독선의 장면을 듣고 본다. 하지만 순행의 교육이 몸에 배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패와 독선을 저지른 당사자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부패와 독선으로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환경과 동기는 순행의 교육이 몸에 배어 있는 우리 모두의 무관심과 더 나아가 방조에 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 부패와 독선의 무능한 정치지도자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왕조시대의 신민보다 더 못한 의식의 소유자들일지도 모른다. 신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하자. 스스로 민주시민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지금의 상황을 오로지 순행의 틀에서만 이해하여 1000만 민중의 촛불을 敬遠시 하기도 한다.


중국의 역사서 사기 열전 편에 등장하는 진섭이라는 노예의 이야기는 스스로 민주시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내는 신민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이 꼭 읽어 보아야 할 이야기다. 진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민중봉기를 하며 이렇게 외쳤다. “달아나도 죽고 의거를 일으켜도 죽는다. 똑같이 죽을 바에는 소리라도 질러보고 죽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정해져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 고려 무신 난 당시 최씨 일가의 사노였던 만적이 난을 일으킬 때도 비슷한 말을 한다.


특검도, 헌재도, 국조도 결국 순행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 자명하다. 순행의 질서를 어지럽힌 몇 명의 부역자와 당사자들을 벌하는 시늉을 하면서 여전히 안정과 조화로움을 강조하는 근본 세력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이를테면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같이 이 사태는 종결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바라는 거대한 국가개조의 패러다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역행의 에너지가 존재하여야 가능한데 1000만 촛불의 에너지가 그 역행의 에너지로 치환될지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 옛날 진섭이나 만적처럼 구체적인 역행의 행동, 즉 민중의거를 일으킬 수도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로서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인 구조에서 이러한 거대한 민중 중심의 역행 행동은 어려워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오늘도 언론은 뉴스를 양산하고 그 뉴스는 각자의 눈으로 해석되어 소비된다. 하지만 그 소비의 결과는 늘 순행의 질서로 귀결되고 만다. 거의 유일한 대안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되는 뉴스의 실체와 그 뉴스의 발원지, 그리고 뉴스의 목적과 방향을 생각해보고 그 속에서 우리의 태도와 생각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엔 사무총장 출신의 얼치기 반모씨의 대통령 지지도가 2위라는 뉴스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반모씨가 여론조사에서 2위라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어야 할까? 우리는 그런 여론조사를 하는 사실도, 그 결과 취합의 공정성도, 과정도, 여론조사의 대상도 전혀 알지 못한 체 오직 뉴스의 제공자들이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하게 된다. 이것이 전형적인 순응이다. 그런데 이 뉴스의 저의가 혹시 반모를 지속적으로 2위라고 알려 그것을 정착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보는 관점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본다면 지금의 뉴스, 그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다. 최소한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 보는 것이 바로 깨어 있음이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뉴스의 소비 태도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7년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있어야 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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