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철학 교과서가 완성되어 간다. 1차 원고 수정을 하다가 아직 쓰지 못했던 머리말을 썼다. 중학생을 위한 교과서라는 형식이라 대중성을 기대할 수 없지만 지난 2020, 2021년 2년 동안의 고민과 노력이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지고 있음에 의미를 둔다.
머리말
대단히 진부하지만 서양에서 철학은 ‘지식(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했다. 지식을 사랑하고 탐구하는 그 모든 것이 철학인 셈이다. 고대 그리스의 수많은 철학자들, 그리고 중세와 근세의 수많은 서양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지식(지혜) 사랑의 방향과 어려운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었고, 현대에도 우리는 서양 철학을 통해 지식의 진보와 그 섭리를 배우게 된다.
그러면 동양의 철학은 어떠한가? 哲學(철학)의 ‘哲’은 꺾을 ‘折(절)’과 입 ‘구(口)’가 합쳐진 형성 자로서 ‘꺾다’라는 말에 터 잡아 ‘모든 것이 분명하다’, 또는 ‘확연해졌다’로 풀이하기도 하고, ‘꺾어서 사태를 낱낱이 파헤쳐본다’까지 의미를 확장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차린 것을 언어(口)로 나타냄을 ‘哲’, 즉 ‘밝다’라고 뜻을 새겼다. 명확하고 분명한 이론의 바탕에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철학이라고 동양 사람들은 생각한 모양이다. 동 서양 모두 의미의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2019년 9월 1일, 바로 전 날까지 고등학교 교사에서 중학교 공모교장이 되었다. 간접적으로는 교장이라는 직책의 무게를 비슷하게 알고 있었지만 현실로 경험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중학교 교장이 되어 고민한 여러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작은 학교의 아이들에게 교장이라는 행정적 직책에 따르는 역할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보는 것이었다. 자존감이 낮아진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고민했고, 마침내 도달한 곳이 중학생 ‘철학교육’이었다.
2020년 봄부터 수업을 하기 위해 2019년 가을 동안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철학교육’을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였고 2019년 겨울쯤에 드디어 가르쳐야 할 ‘차례’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차례에 따르는 내용이었다.
교재를 완성해서 아이들을 지도하려 했으나 시간상으로 불가능했고 마침내 교재를 쓰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대단히 무모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2021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2년 동안 총 55주(55시간)에 걸친 수업을 통해 써온 교재가 대충 얼개를 갖추게 되었다.
경상남도 중학교 교육과정에는 ‘철학’ 교과가 없다. 아마 다른 도 교육청도 비슷할 것이다. 지난 2년간 55주(55시간)의 수업은 교육과정상 ‘창체’ 시간에 이루어졌는데, 사실 창체 시간에는 별도의 연간 계획이 있고 그 계획에 따라 아이들의 생기부가 작성된다. 결국 나와 아이들은 지난 2년 동안 유령처럼 그 시간을 이용했을 뿐이다. 이렇게 창체 시간을 쓰지 않으려면 철학 교과를 중학교 교육과정에 정규 편성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하지 않다.
일단 대단히 부족하고 엉성하지만 철학 교과서가 마련되었다. 이제는 그다음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나의 교장 임기는 2023년 8월 31일까지 뿐이다. 당연히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일을 추진할 생각이다. 그다음 일은, 길을 생각하고 열었으니 누군가는 그 길을 넓히고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끝으로 지수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광막한 철학의 바다에 작은 배 하나를 띄웠고, 이제 2년 동안의 항해를 거쳐 매우 가깝기는 하지만 첫 항구에 기착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무한 애정과 신뢰를 보낸다.
철학 수업의 대 전제는 인간 본성의 위대함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2022년 4월 2일 지수중학교에서 중범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