渾沌
《장자》 응제왕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해의 제帝는 숙儵이고 북해의 제는 홀忽이고 중앙의 제는 혼돈渾沌이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함께 만났는데, 혼돈이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하였더니, 숙과 홀이 혼돈의 은덕에 보답하려고 함께 상의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일곱 개의 구멍(7규竅 눈 2, 코 2, 귀 2, 입 1)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만은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줍시다.”
하고는 하루에 한 구멍씩 뚫었더니 칠일 만에 혼돈이 죽어버렸다.
‘장자’ 특유의 우언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명 청 교체기의 화승畵僧 팔대산인은 남종선㈜의 종지宗旨인 일이불이一而不二에 심취하여 이렇게 풀이한다. ”어느 하나도 분별없는 것이 없고, 어느 둘도 두 가지로 불리지 않는 것이 없다.” (진정陳鼎이 저술한 《팔대산인전》)
이 말에서 ‘하나’란 우리가 세는 단위의 ‘하나’가 아님은 분명하다. 아마도 흐릿한 전체의 경지를 ‘하나’라고 불렀을 것이다. 둘 역시 마찬가지다.
팔대산인의 친구이자 역시 뛰어난 화가이자 승려였던 석도石濤는 이렇게 읊었다.
흐르는 물이 구름을 머금어 차가우니, 어부는 낚시를 마치고 돌아가네. 산속의 경계는 무엇인가, 낙엽은 새처럼 날리는데. (流水含雲冷 漁人罷釣歸 山中境何似 落葉如鳥飛) 가을날 석도의 눈에 비친 세상의 풍경은, 물이 차서 고기가 잡히지 않아 고기잡이를 마친 어부, 그리고 날리는 낙엽, 구름을 머금어 흐르는 강물은 모두 석도의 의지와는 무관한 경계다. 다만 그 경계는 알 수 없으니 석도 스스로 ‘무엇에 견줄 수 있는가’(何似)라고 자문한다. 아련하고 흐릿한 경지다.
도덕경에 돈돈혜沌沌兮(혼돈스럽구나!)는 어떤가?
왕필이 지은 도덕경주道德經注에 따르면 “나누어지고 흩어지는 것이 없으니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無所別析 不可爲名)로 풀이한다. 마음의 모습을 보고자 하지만 보려고 하는 순간 나뉘어 흩어진다. 하여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오전이다. 그 혼란스러움의 실체를 보고자 하니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공부가 부족한 탓이리라.
남종선은 격외선格外禪을 핵심으로 한다. 격외선이란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하는 마음의 법리法理인 교외별전敎外別傳과 격식과 단계를 벗어난 수행의 이치인 격외도리格外道理, 그리고 글자에 얽매이지 않은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바탕으로 한 선禪을 대체로 격외선이라 부른다.
달마 이후 제6조 혜능慧能 계통의 격외선을 흔히 남종선南宗禪이라 하는데, 이 남종의 격외선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신라 말의 도의道義선사였으며, 그를 이어 많은 선사가 격외의 선법禪法을 중국에서 받아들여 와서 산문山門을 열었다. 그리하여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아홉 산문이 이루어졌으므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일컬었고, 그 이후는 물론 지금도 조계종曹溪宗을 비롯한 한국불교의 참선은 이 격외선이 주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