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11)

by 김준식

9월 1일 자로 학교를 옮기시는 두 분 선생님들 소식을 듣는다. 공모 만료가 되어 4년 동안 정든 학교를 떠나시는 두 분 선생님 소식을 들으며 그분들이 헌신한 지난 4년의 세월은 교육 본질의 회복을 위한 혁신의 기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단위 학교의 혁신이고 범위를 넓히면 경남 교육 그리고 대한민국 교육 혁신에 작은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이 분들이 4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그 학교를 떠나시는 순간, 그분들의 4년은 바로 과거가 된다. 과거는 이미 고정되어 버려서 바꿀 수가 없다. 지난 4년의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가 무용한 것인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더러 무용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현재의 거울로 작용한다.



즉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방향의 말 없는 가르침이 바로 과거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과거의 기준에 의존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바탕이 과거이기 때문에 그 바탕을 고려하는 정도의 인식만으로 충분하다.



나 역시 1년이 남아있는 지금 지나온 3년과 앞으로의 1년을 생각해 본다.


도덕경 64장은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상황을 잘 알려준다.


爲者敗之, 執者失之. 是以聖人,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위자패지, 집자실지. 시이성인, 무위고무패, 무집고무실.)


여기서 爲는 무리하게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무리하게, 또는 억지로 하고자 하면 실패하게 되고, 執은 집착이다. 즉 무리하게 집착하면 잃어버린다(놓친다). 그러므로 성인은(이 부분은 빼도 좋다.) 무리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았고, 무리해서 잡지 않아 잃어버리지 않았다.



교육은 일종의 흐름과 같다. 미세한 흐름으로부터 거대한 격류까지 모두 교육에 있다. 문제는 방향이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면 교육의 절반은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방향을 모른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본다.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고 좌절하고 또 실패한다. 그 지점에 노자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근대를 겪으면서 습득해 온 우리의 잘못된 습관들, 이를테면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무리하게 집착하는 버릇과 행동을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 시대와 무관하게 교육은 여유이어야 한다. 즉 교육은 기다림이며, 교육은 모두 함께 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늘, 또는 자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또 자주 집착으로 교육의 흐름을 막았고 또 막고 있지 않나.



노자의 말씀은 이어진다.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愼終如始 則無敗事.(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사람의 일은 늘 이루어지는 단계에서 실패한다. 마지막을 처음처럼 신중히 한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다.


1년을 남긴 나에게 이 말만큼 가슴에 와닿는 말이 없다. 나의 공모 교장 4년이 잘 이루어지려면 남은 1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를 노자께서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신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신중하게 남은 1년을 보내라는 말씀이다.


덧, 사실 여기에 인용한 64장의 이야기는 64장 전체로 보면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20세기 최고의 노자 전문가 奚侗(해동)에 의하면 오히려 29장의 이야기와 맞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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