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 (12)

by 김준식

노자 도덕경 산책 (12)


태풍이 지나갔다. 어김없이 사람과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마침내 소멸하여 무로 돌아갔다. 이제 태풍은 이름만 남았다. 남겨진 이름으로 존재가 확인이 된다. 좀 더 들어가 보자. 태풍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는 이름은 태풍이 존재할 당시에 명명命名된 것인데 태풍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이름이 남아 존재를 확인시킨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존재가 그러하다. 실존하는 것에 이름이 있다. 동시에 그 이름은 실존하지 않아도 남게 된다. 그렇게 존재와 이름 사이에는 분명 공간이 있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그 공간은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마침내는 그 공간이 너무 커져서 이름과 존재 사이의 상관관계가 모호해지는 단계에 이른다. 즉 그렇게 명명된 실존이 사실 그 이름에 부합하는지 조차 애매해지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것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의 문제다. ‘신’이라고 명명된 존재와 ‘신’이라는 이름 사이의 공간은 우주만큼 넓거나 명명된 이름 그 자체일 수 있다. 오래전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그는 ‘에티카’의 첫 부분을 Part I. Concerning God.(신에 대하여)로 했는지 모른다.


스피노자는 ‘에티카’라는 책 제목 뒤에 ‘기하학적 순서에 맞춰(Demonstrated in Geometrical Order)’라는 부제를 달았을 정도로 모든 문제를 수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심지어 그들의 ‘신’조차도.



그 기하학적 장치 중 하나가 바로 Axiom(공리)이다. 공리公理란 어떤 이론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命題이다. 즉, 다른 명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전제로 이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가정을 가리킨다. 참된 지식(이 자체도 매우 애매하지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근거를 소급하고 소급해 보면 더 이상 증명하기가 곤란한 순간(명제)에 다다른다. 이때 이것(상황)을 나타낸 것이 바로 공리이다. 증명이 필요한 명제 중 공리에 의해 증명이 완료된 명제를 정리(Proposition)라고 스피노자는 부른다.



1부. 신에 대하여> Axioms VII. If a thing can be conceived as non-existing, its essence does not involve existence.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된다면, 그 본질에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기가 막힌 스피노자의 정리가 아닌가! 이 공리에 있는 '어떤 것(thing)' 대신에 ‘신’을 넣어보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되면 ‘신’의 본질에는 존재가 포함되지 않는다. 즉 ‘신’은 ‘존재’ 혹은 ‘존재하지 않음’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논리가 된다.



뭐라 반박할 수 없는 명료함이 있다. 하지만 명징하고 교묘한 논리 뒤에는 반드시 뭔가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따른다.



이 순간에 노자께서 등장한다.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났고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도덕경 40장 일부)


스피노자가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골몰한 반면, 존재를 바로 ‘무’로 환원시켜버리는 다소 비약적인 때론 혁명적 생각이 바로 노자께서 한 말의 핵심이다.



노자의 말을 좀 더 생각해보자. 먼저 모든 '존재(有)'는 만물의 생성 근거라고 이야기한다.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만물’과 ‘有’는 동의어가 아니다. 여기서 ‘有’는 스피노자의 '본질'에 가깝다. 스피노자의 '본질'에는 '존재'와 '존재 아닌 것'들이 섞여있는 '혼돈'의 상태다. 그 '혼돈'의 상태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들이 바로 '천하 만물'들이다.



그 바탕이 되는 '존재'와 '존재 아닌 것'들의 근원이 '무無'라는 이야기다. 본래 '무'는 처음부터 '공백이 아니라 있다가 없어진 상황을 나타내는 한자다. (수풀이 우거진 모양 + 火, 즉 완전히 타서 없어진 상태) 그러니까 '존재'의 형식을 가졌거나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 가득한 곳에서 '有'가 분리되어 나왔으니 '有'의 속성은 존재와 존재 아닌 것들의 혼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有'로부터 천하 만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모호하다.



태풍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멀리 왔다. 정리해보면, 태풍은 존재했다. 그리고 '존재'의 표식인 이름을 획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혼돈의 '무'로 돌아갔다.(노자 말씀의 역순) 그런데 이름이 남았다. 그 이름에는 '존재'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태풍(이름까지 포함하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된다.(스피노자) 다만 할퀴고 간 상처만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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