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
한 낮은 여름처럼 덥지만 느낌은 여름 같지 않다. 견딜만하다.
점심시간 들판을 산책하면서 익어가는 가을을 본다. 밭 한쪽, 뜨거운 태양열에 잘 썩어가는 거름과 내가 걷는 길가 알 수 없는 작은 꽃들과 그들의 거룩한 번식을 본다. 마찬가지로 도로에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 최후의 한 걸음을 옮기는 사마귀와 충분히 살을 올려 겨울을 나야 하는 뱀도 가끔씩 보인다.
제각각이지만 일사불란한 움직임이다. 농부들은 끝물 고추를 수확하고 이미 잘린 참깨 밑동들, 그리고 아직 크고 있는 들깨들, 이제는 꽃의 흔적만 남아있는 도라지와 곧 수확할 고구마 순들이 어지럽다. 그런가 하면 늦은 가을 김장의 주역이 될 무와 배추는 정갈하게 한쪽을 차지하고 각각 잎 몇 개를 밀어 올려놓고 있다.
백로는 논 바닥 우렁이를 잡아먹고 내 발자국 소리에 어디론가 날아간다. 벼 이삭들이 바람에 일렁인다.
이쯤에서 노자의 말씀이 들린다.
不出戶, 知天下(불출호, 지천하)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不闚牖, 見天道.(불규유, 견천도) 창 너머 비스듬히 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보네.
(도덕경 47장 일부)
나는 그나마 지수중학교 앞 길을 둘러보아야 겨우 세상의 모습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자께서는 집 안에서 천하의 움직임을 짐작하고, 방 안에서 창 밖으로 내다보지 않아도 세상이 저절로 움직이는 이치를 안다. 보통의 우리는 노자의 경지를 알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하면 알 수 있으려나?
이러한 동양의 노자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중에 17세기 서양의 데카르트가 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자신 스스로 조차도 의심해 보는 사람이었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 번째 명증 하게 인식하지 않은 것은 하나라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마라!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라.)
두 번째 검토대상을 가능한 한 여러 부분들로 필요한 만큼 나누라! (세분화시켜서 각 부분들을 명확한 지식들로 구축하라.)
세 번째 가장 단순하고 쉬운 것부터 인식을 시작하여 복잡한 것으로 옮겨갈 것.(순서를 마련해야 올바른 과학적 추론이 가능)
네 번째 완전한 열거와 검토를 통해서 신뢰 가능한 지식이 습득될 때까지 점검하라!
(방법서설, 르네 데카르트, 소두영 역, 동서문화사, 2016. 37쪽)
노자께서 들으면 참으로 답답해할 이야기인데…… 한 편으로 생각해 보니 노자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완전히 데카르트와 대척 점에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노자처럼 방 안에서 천하를 알려면 데카르트의 4가지 사유의 방법을 넘는 치밀한 사유 능력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창 너머 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알려면, 이미 그리고 충분히 과학적 추론을 거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