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교육

實體와 實在

욕실에 걸린 수건을 보며

by 김준식

실재와 실체


수건을 쓸 때, 가끔이기는 하지만 거기 쓰여 있는 글자와 연도를 보면서 놀라곤 한다. 우리 집만 해도 오래된 것은 벌써 20년이 지난 수건도 있다. 돌아가신 선친이나 집안 어른과 관련된 수건 여러 장이 아직도 아무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다.


2000년쯤에 누군가 준 크리스마스 수건이 오늘 우리 집 화장실에 걸려 있었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이 수건에 적혀 있는 Merry-Xmas라는 단어가 아직도 너무나 선명하다. Merry는 즐겁다는 말인데 어원상으로는 Proto-Germanic(고 게르만어) “murgijaz”에서 유래되었는데 말의 뜻은 놀랍게도 "short-lasting"(짧은 지속)이라는 의미이다. 즐겁다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의미로 추론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수명이 긴 수건에 적혀있는 Merry는 매우 짧은 지속을 의미하는 상반된 두 개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재미있고 기이하다.


요즘은 정년퇴임이나 결혼식 그리고 특별한 기념일 행사에 수건을 주고받는 일이 별로 흔하지 않지만, 지나온 교사 생활 30여 년 동안 참 무던히도 많은 수건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늘 쓰는 물건이니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을 뿐 아니라 젖고 더러운 것을 말끔하게 닦아내는 수건의 특성으로 하여 여기저기 기념품으로 수건을 많이 이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모든 것이 변하고 이제는 수건도 예전만큼 주고받는 일이 없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죽고 나서도 우리 집 화장실에는 내가 살아 있을 때 쓰던 수건이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무생물인 수건과 생물인 나는 동일한 공간에 위치하는 각각의 실체인 셈이다. 실체(Substance)에 대하여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모든 실체란 정신적 혹은 물질적 것이라고 믿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수건은 물질적 실체이고 나는 정신적, 물질적 두 가지 실체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한편 스피노자에 의하면 실체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그 자체를 통하여 이해되는 것, 다시 말하면 그것의 개념이 그것의 근거가 되는 다른 어떤 존재의 개념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데카르트의 영향이 조금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설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건의 실체와 나의 실체는 구별해야 할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 것이되기도 한다.


역시 스피노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그의 명저 단자론(Monadology)에서 실체(단자)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는 또 실체는 다른 모든 실체들로부터 오는 간섭과 접근을 물리치고, 그 자체의 독립된 존재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지키는 비물질적 실재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스피노자의 사상으로부터 나아가 실체를 우주론적 관점으로 확장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에 의한다면 나와 수건은 실체가 아니라 다만 실재하는 객체로서 무한한 단자들의 복합물(Compound) 일 뿐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에 의한다면 나의 정신적 실체 혹은 수건의 물질적 실체는 공간 속에서 혼재하는 객체들로서 그저 실재하고 있을 뿐이다.


화장실 수건에 적혀 있는 오래된 글씨 속에는 그 수건을 제작하던 당시의 정신적 의지가 담겨 있다. 무엇을 기념하겠다는 그 정신적 의지를 데카르트의 의견을 좇아 정신적 실체라고 가정하고 그 수건을 쓰고 있는 나의 정신적 실체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정신적 의지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넘어 늘 실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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