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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2 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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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29. 2022

사람의 일

사람의 일


한낮, 가만히 앉아 집 밖에 펼쳐진 풍경을 본다. 이 집에 이사 온 이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거의 변함없지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은 다르다. 사람의 일이 그러하다. 


2022년 繕性(나의 한시집 제목)이 내 손에 들어왔다. 늘 아쉽다. 하지만 딱 이것이야말로 나의 현 수준이며 상황이다. 아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의 일이다.


수정을 부탁받은 논문을 보고 수정하려다가 그만둔다. 논문을 쓰신 분 입장에서 본다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과정인데…… 싶다가도, 마음 한편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돈다. 내용은 두고서라도 문맥의 혼선이 몹시 당황스럽다. 고치려니 끝이 없고 두자니 찜찜하다. 또한 사람의 일이다.


오전에 학교에 다녀왔다. 아무도 없는 주말의 학교는 참 조용하고 웅숭깊다. 얼마 전부터 핀 국화에 물을 주고, 출력물을 출력하고 금요일 출장 탓에 하지 못했던 문서들을 결재를 했다. 이 학교도 이제 306일 뒤면 떠난다. 지난 1154일 동안 나는 이 작은 학교의 교장으로 매일, 매 순간 뭔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행동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별로 한 일이 없다. 이제 남은 300여 일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것인가? 역시 사람의 일이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딸아이가 자신의 생일이라고 집에 왔다. 내가 끓인 미역국을 제일 좋아하는 딸의 생일인데 아침엔 자는 것이 좋다 하여 내 원칙을 어기고 그냥 자게 했다. 마음 편히 자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자겠다는 딸아이를 일부러 깨워 생일 미역국을 먹이는 것은 오히려 딸아이에게 부담일 것이다. 푹 자고 일어난 딸아이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사 먹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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