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걸 퐁파두르
루이 15세(루이 14세의 증손자)의 여성편력은 역사에 기록될 만큼 복잡했다. 하지만 그의 여자들 중 왕이었던 루이 15세보다 후세에 더 유명한 사람이 바로 퐁파두르 후작부인이다. 타고난 미모와 능력으로 18세기 유럽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그녀의 35세(1756년) 때 모습을 당시의 궁정화가 프랑소와 부세(François Boucher, 1703 – 1770)가 그린 초상화이다.
배경은 실내다. 한껏 멋을 낸 후작부인 뒤에는 로코코 양식의 거대한 거울이 있다. 거울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그녀가 살았던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었는데 궁전의 방들을 거울의 방이라 할 만큼 각 방마다 거울이 많이 놓여 있었다. 그 궁전의 방들은 지금 가 보아도 거울이 많다.
거울에 비친 퐁파두르 부인의 머리모양은 ‘퐁파두르’라는 이름을 가진 헤어스타일의 하나(머리카락을 부풀리지 않고 깔끔하게 뒤로 넘긴 후 조화, 리본, 진주 등으로 장식하는 헤어스타일)로 정착될 만큼 유명하다. 그녀의 옷은 화려함의 극치다. 치맛단, 옷깃마다 장미꽃을 비롯한 화려한 꽃이 피어있고 손목에는 5줄의 진주팔찌가 있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손에는 책이 들려져 있는데 이는 그녀가 계몽사상과 백과전서파에 심취하여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다. 앞 쪽 콘솔에 있는 깃털 펜이 한 번 더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듯하다. 일반적인 장식으로 보아도 무방하기는 하다.
부세는 파리 출생으로서 궁정화가가 되어 퐁파두르의 총애를 받아 화단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는 루벤스와 와토를 존경하여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을 바탕으로 그리스신화적 영감을 동시에 표현하였다. 즉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 안에 요염한 여신의 모습을 그렸고, 또 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우아한 풍속과 애정장면을 즐겨 그렸는데 특히 물체에 반사된 빛의 묘사에 탁월한 재주를 보였다. 이 그림에서도 섬유의 구겨짐과 질감이 사진처럼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실내의 빛을 반사시키는 저 풍성한 치마를 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엄청난 압박의 코르셋을 착용했을 것인데 그 때문인지 후작부인의 표정은 밝고 화사하기보다는 살짝 굳어 있다. 궁정의 엄숙함을 표현하기 위해 신체 노출은 자제하고 가능한 화려함과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당시 궁정의 다른 여인들이 오로지 왕의 총애를 바라면서 삶을 소진하는 것과는 달리 퐁파두르는 정치 문화적인 활동으로 열정적인 삶이었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살짝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예술적 영감으로 탄생한 프랑스의 세브르 도자기의 붉은빛을 ‘퐁파두르 장밋빛’으로 부를 만큼 그녀의 예술적 감각은 뛰어났다. 시대를 앞서가는 그녀의 이상주의자적인 모습을 부세는 퐁파두르의 시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퐁파두르는 고된 궁정생활과 타고난 병약함 탓에 결핵에 걸려 42세에 죽었다. 대부분의 재산을 루이 15세 앞으로 남겼고, 나머지 재산은 남동생 아벨과 친구들에게 물려줬다. 프랑스 곳곳에 있던 퐁파두르 명의로 된 저택은 생전에 자금을 마련하려고 매각하거나 사후 다른 용도로 바뀌거나, 프랑스혁명 때 파괴되었고, 퐁바두르의 개인 별장이었던 엘리제 궁은 현재 프랑스 대통령 관저가 되었다.(권력과 욕망, 마거릿 크로스랜드 지음, 이상춘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 244~246쪽)
Portrait of Marquise de Pompadour, Oil on canvas, 201 x 157 cm, 1756. Alte Pinakothek, Mun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