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지론

by 김준식

그림 위에 락지론이 쓰여 있다. 이 그림은 청나라 화가 시림施霖의 그림이다. 역시 청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주량공周亮工의 화첩에 포함되어 있다. 그림 이름은 산장도山莊圖인데 락지론의 분위기와 썩 어울리지는 않는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상이 하도 이상하니 자연스럽게 현실을 피하고 싶어 진다. 역사를 통해 난세를 산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중장통(仲長統, 180년 ~ 220년)은 후한 말 위나라 사람이다. 자는 공리(公理)다.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 성격이 강건하고 솔직하니 광생(狂生-약간 미친 사람)이라 불렸다. 다행히 순욱의 천거로 위나라의 조조를 섬겨 상서랑에 천거되었다가 참승상군사가 되었지만 40세에 일찍 죽게 된다. 중장통은 역사와 현실을 논하면서 이를 탄식하며 창언(昌言)이라는 책을 저술했지만 일부만 전한다.


중장통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락지론'이라는 명문 탓이다.


락지론은 요즘 말로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다. 즐거움을 꿈꾸는 것은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락지론의 전문이다.


"使居有良田廣宅,背山臨流,溝池環匝,竹木周布,果蔬樹前,場圃居後。舟車足以代步涉之艱,使令足以息四體之役。養親有兼味之膳,妻子無苦身之勞。良朋萃止,則陳酒肴以娛之,嘉時吉日,則烹羔豚以奉之。躊躕畦菀,游戯平林。濯清水,追涼風,釣游鯉,弋高鴻。風於舞雩之下,詠歸高堂之上。安神閨房,思老氏之玄虛,噓吸精和,求至人之髣髴。日與達者論道講書,俯仰二儀,錯綜人物。彈南風之雅操,發清商之玅曲。逍遙一世之上,睥睨天地之間,不受當世之責,永保性命之期。如此則可以凌霄漢,出宇宙之外矣,豈羨入帝王之門哉!"


이를 테면 사는 곳이, 좋은 밭과 넓은 집이 있는데 산을 등지고 물에 임하여 주변에는 연못이 있고 대나무는 두루 퍼져 있으며 채마밭이 앞에 잘 가꾸어져 있고 과일은 집 뒤에 있다. 배와 수레가 있으니 걸어 다니는 어려움을 대신하고 하인들이 온몸으로 일하고 쉬기에 넉넉하며, 어버이를 봉양할 진미와 반찬이 있고 처자는 몸을 괴롭히는 노동이 없다.


좋은 벗이 모여 자게 되면 술과 안주를 차려 즐기고 길한 날 좋은 때에 양과 돼지를 삶아 조상에게 올린다. 밭두둑을 어슬렁거리고 여유로운 숲에서 유희하며 맑은 물로 씻고 서늘한 바람을 따른다. 노니는 잉어를 낚시하고 높이 나는 기러기를 잡고 기우제단 아래에서 춤추고 고당의 위에서 읊조리며 돌아온다.


규방에서 정신을 편안히 하여 노자의 현玄(도덕경 1장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는 현묘하고도 또 현묘하니 온갖 미묘한 것들이 들고나는 문)과 허虛(도덕경 4장 道, 沖, ‘沖충’은 도덕경 백서본 ‘盅충’으로 되어 있으며, ‘盅’은 ‘텅 빈 그릇’을 의미하는 글자다. 즉, 도를 텅 빈 거대한 그릇에 비유)를 생각하고 맑은 기운을 호흡하며 지인至人(도교에서 말하는 경지에 오른 사람)과 비슷해지길 원하니 통달한 몇 사람과 도를 논하고 책을 강설한다.


천지를 굽어보고 우러르며 인물을 섞어 종합적으로 평론하며(착종錯綜이란 교착총취交錯總聚의 준말로, 교착交錯은 서로 뒤섞여 엇걸림을 뜻하고 총취總聚는 종합하여 모음을 뜻한다. 『주역』 「계사전繫辭傳」 上 第10章) 남풍의 우아한 곡조를 타고 청상(망국지음으로 유명한 슬픈 노래)의 오묘한 곡조를 연주한다. 세상 위에서 소요하고 천지 사이를 흘겨보고(아주 낮추어 보고) 세상의 책임을 버리고 삶을 보존한다. 이와 같으면 한나라의 세상을 넘어 우주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어찌 현실 권력자의 문에 들어간 것을 부러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