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의 그림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마리 드니스 르무앵(Marie-Denise Lemoine)’은 1774년 프랑스 파리 출생이다. 마리의 두 언니도 모두 뛰어난 초상화가(큰 언니 마리 빅토아르 르무앵, 바로 위 언니 마리 엘리자베스 가비우)였고 먼 친척 언니인 잔 엘리자베스 쇼데 역시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그녀는 흔히 ‘니사’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794년, 스무 살 되던 해 그녀는 건축학도인 미셸 장 막시밀리앵 빌러스와 결혼했다. (따라서 그녀는 마리 드니스 빌러스 부인이 된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 후 전문적인 예술작품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던 시기에 그녀의 남편 미셸은 니사의 재능을 이해하고 그녀의 예술을 여러 방면에서 지원했다.
1799년 파리 살롱에서 화가 안느 루이 지로데 트리오송을 만나, 프랑수아 제라르와 함께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샬롯 뒤 발도그네스의 초상화》로 알려진 이 그림은 최초에는 그녀의 스승,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으로 알려졌다가 다시 콘스탄스 마리 샤르팡튀에(‘멜랑 코리’로 유명한 화가)의 그림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침내 니사의 그림으로 판명되었다. 이렇게 혼선이 생긴 이유는 이 그림엔 서명이 없다.
그림을 보자.
여러 도상 학자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그림의 장소는 루브르 박물관 갤러리일 것이라고 추정되는 방에 “샬롯 뒤 발도그네스”라고 알려진 소녀가 앉아있다. 빛은 창 쪽에서 들어오고 소녀는 그 빛의 반대로 얼굴을 돌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세이지만 캔버스 외에는 구체적 묘사가 없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붓이나 연필로 추정되는 손잡이를 쥔 오른손이 보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통설이다.)
창문 유리창이 깨져 있고 그 뒤로 남녀 한 쌍이 보이는데 이러한 장치는 이시동도법(한 장면 속에서 다른 시간대를 보여 주는 그림)이나 또는 트롱프뢰유(일종의 환영이나 착시 효과를 주는 그림)의 기법으로 보이는데 이 그림에서 구체적으로 모델인 샬롯의 이야기인지 또는 다른 암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모델인 샬롯이 화가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떠돌지만 그녀는 실존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1786년에 태어나 1868년에 죽었다는 기록이 MET(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그림 설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그림은 1801년 그려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델인 샬롯은 이제 15세 정도의 어린 소녀였고, 그림을 그렸던 니사(빌러스 부인) 역시 겨우 27세였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깨진 유리 뒤에 남녀는 그림의 주인공과는 무관한, 그야말로 단순한 풍경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트롱프뢰유’나 ‘이시동도법’의 방식이 적용될 소지가 낮지만, 그림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떨어진 풍경이기 때문에 깨진 유리 속의 남녀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치 달빛(그림 속 시간은 분명 낮시간이다.)처럼 은은한 광선이 머리 뒤에서 비추고 고개를 화가에게로 돌려 정면을 응시하는 샬롯의 금발과, 눈동자 그리고 얇은 미소의 표정은 참으로 신비롭다. 화면 전체에 나타난 단순성과 대칭성, 그리고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연상시키는 모델의 옷과 의자에 걸친 직물의 질감은 어쩌면 신 고전주의의 기수였던 스승 다비드의 영향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