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치는 세상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림 여행(6)

by 김준식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연작 중 The Great Wave of Kangawa 1826 and 1833

18세기에는 현재의 일본의 수도 동경(도쿄)을 에도라고 불렀다. 이 에도를 중심으로 한 시대가 에도 막부시대다. 정확하게 에도막부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가 일본을 통치한 1603년부터 1868년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 일본 대중예술의 백미는 단연 우키요예였다. 우키요예(浮世繪)는 17세기에서 20세기 초 일본 에도 시대에 성립된 예술 형태로서 일상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 풍속화의 형태를 일반적으로 말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색상을 이용하여 찍어낸 목판화인 니시키에(錦絵)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직접 그린 그림도 우키요예라고 부른다.


우키요예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림 사람은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라는 사람인데 쇼군의 거울 만드는 匠人의 아들로 태어나 12세 때 목판화 제작소에서 목판화를 배우게 된다. 그는 평생 30개 정도의 가명을 썼는데 이는 당시 유명한 화가들이 가지는 유행이었다. 호쿠사이는 두 번 결혼을 하여 2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얻었지만 안타깝게도 두 명의 부인이 모두 일찍 죽고 만다. 막내딸이 호쿠사이의 조수로 봉사하는데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 Fireworks in the Cool of Evening at Ryogoku Bridge in Edo (橋夕涼花火見物之図 c. 1788–89, 가을밤, 에도의 류코쿠 다리에서 불꽃놀이)가 완성된다.


그가 60대 후반부에 그린 이 그림은 우키요예의 걸작 중 하나이다. 물론 그는 이런 파도 그림을 많이 그렸다. 유독 이 작품이 널리 알려져서 그가 그린 다른 그림을 가리고 있지만 그가 남긴 다양한 소재의 그림들은 일본 회화사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 특히 바다에 대한 생각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동양 삼국(우리나라, 중국, 일본)이 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사뭇 차이가 있다. 동양 삼국의 그림에서 일반적으로 물과 안개 그리고 상상의 공간은 여백으로 표현된다. 서양의 그림에서 여백은 빛이거나 혹은 빛 이어야만 한다. 즉 빛 외에는 여백을 두지 않는 것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 빛은 신을 위한 공간이다. 최소한 19세기 이전 서양 회화에서 여백은 그러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워야 비로소 완성된 그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여백도 우리와 중국, 그리고 일본이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엄격히 구분할 만한 기준선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미묘한 삼국의 관계처럼 이 또한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경산수화를 그렸던 우리의 겸재 정선(1676 ~ 1759)이 그린 물, 즉 바다와 파도를 보자. 그의 그림 ‘甕遷(옹천)’에서 파도는 멀리 저 밑에서 넘실대지만 산허리를 따라 도는 나그네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산과 바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비슷한 거리를 유지하며 조화롭게 유지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석도 주도제(1641~1720, 청나라 초의 화가)의 그림을 보면 중국인이 생각하는 물과 여백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다. 그가 그린 ‘풍우목귀’의 물은 거센 느낌이 확연하다. 목동이 물살을 건너는 것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물살은 빠르고 거칠다. 물론 경사가 진 언덕이지만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과 인간, 즉 자연과 인간은 서로를 지배하거나 혹은 지배당하는 존재로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 중심으로 표현된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의 단원(1745~1806)이 그린 ‘涉牛圖(섭우도)’를 보자. 이 섭우도는 위에서 말한 석도의 그림을 모티브로 했지만 소도 사람도 물도 모두 평화롭다. 소가 잠긴 높이로 보아 만만한 물은 아니나 어디에도 거친 물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심정적으로 물이 많으니 조금 걱정스러워 보일 뿐이다. 이 차이가 중국과 우리의 차이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17~9세기 조선과 중국의 화가는 그렇게 물을 그리고 있다. 자연과 인간과의 타협에 중점을 둔 18세기 우리의 정서는 이처럼 그림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인간은 자연을 넘지 아니하고 자연 또한 너른 품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섬나라 이웃 일본의 물은 사람을 집어삼킬 만큼 거세다. 바로 호쿠사이의 그림이다. 거대한 산봉우리 같은 파도가 일어 배와 사람을 집어삼킬 듯하다. 물론 일본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섬이고 그들이 늘 우려하는 것은 태풍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염려와 그 염려를 극복하기 위한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파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너무나 확연한 물의 변화에 사실 조금은 놀라게 된다. 자연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그것이 하나의 일상으로 굳어진 그들의 神社신앙이 조금은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이 그림의 정식 이름은 ‘神奈川沖浪裏(신내천충랑리)’로서 충실하게 해석하자면 ‘가나가와 앞 파도의 모습’(가나가와는 일본 간토 지방 남서부에 위치하며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 남쪽에 인접하는 현이다. 현도는 요코하마다. ) 정도인데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일본 사람들이 물, 바다에 대한 생각이 그대로 느껴진다. 사람을 지배하는 바다, 바다의 위력 앞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거대한 파도와 바다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간혹 쓰나미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그건 확실히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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