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즌 후기
영화적 공간 속에서 분명 정익호(한석규 분)는 절대자인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우리는 이미 현실 공간에서 정익호를 능가하는 여러 존재들을 경험하였으므로 영화는 처음부터 현실보다 못한 상상력으로 출발하고 말았다. 그래도 처음 몇십 분은 거대한 음모가 수면 아래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또 한 번 현실의 난관 앞에서 무릎을 꺾고 다만 삼류 깡패 이야기로 추락하고 말았다.
돈 몇 만 원 이상을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하여 제공받으면 청렴의무 위반이라는 김영란 법 때문에 교사인 나는 2017년 스승의 날에는 생화 한 송이도 가슴에 달지 못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런 현실 앞에서 수 천, 수 억의 뇌물이 오고 갔음에도 증거 불충분으로, 혹은 뇌물죄의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면하거나 처벌이 불가한 경우를 자주 보아왔고, 또 지금도 보고 있다. 그런데 영화적 공간에서 이 뇌물은 어떤 위험(?)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제공되고 또 제공받는 것으로 묘사된다. 대다수의 교정 행정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큰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을 만큼 영화적 공간에서의 교도소는 매우 부패한 장소로 묘사된다.
정익호(한석규 분)는 이러한 부패한 교도소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존재다. 처음 몇 장면에서는 그가 제법 대의(대의라고 해 보아야 부자와 권력자를 응징하고 그 부산물을 약자에게 분배하는 정도이겠지만)를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하게끔 영화적 서사를 이어가는데 그러한 대의에 대한 약간의 기대는 영화 중반 부를 넘어서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하기야 부패와 뇌물이 오가는 곳에서 대의란 있을 수 없는 것 인지도 모른다. 또 한 명의 주인공 송유건(김래원 분)의 대의는 또 무엇인가? 서양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Undercover operation(잠입 수사)가 우리나라에서 합법인지 혹은 불법인지는 정확하게 경계를 알 수 없지만, 이미 대륙법계의 여러 나라에서는 아장 프로보카퇴르(agent provocateur - 함정수사)라고 부르는 수사방법이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송유건의 대의는 개인적인 복수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이 개인적 복수라는 대의를 위해 범죄자와 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연대는 오히려 송유건 스스로의 대의명분을 약화시키고 마침내 교도소라는 장소의 굴레에 잠식되고 만다.
정익호는 교도소에서 교묘하게 범죄를 敎唆(교사) 하기 때문에 법망을 너무나 쉽게 피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수많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 해결을 위한 범죄 청탁이 있게 된다. 당연히 그 대가로 엄청난 금전적 이익이 생긴다. 그 금전을 교도소의 교도관에게 뇌물로 공여하고, 심지어는 그렇게 공여된 뇌물을 이용하여 교도소의 인사권마저 넘보게 된다. 따라서 정익호는 자신의 세계인 교도소를 나갈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도소라는 특수한 장소적 이점을 활용하여 교도소를 영원한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의 부패와 난맥상을 이러한 정익호와 연결하고, 그 추악함을 영화적 공간에서 확실하게 드러냈어야 하는데, 결정적인 변곡점에서 감독은 한 발 뒤로 물러나고 만다. 즉, 이 땅의 추악함과 부패가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슬쩍 보여주기까지는 했지만 그것을 열어 보여주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요인이 있다는 것을 감독이나 작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순간 매우 답답했고 심지어 약간의 불쾌감마저 느꼈다.
현실과 높은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교도소 내부 수인들의 辛酸(신산)한 삶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쉽게 겪어 볼 수 없는 삶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역설적으로 모든 이에게 매우 특이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범죄자들이다. 그중 극소수는 범죄의 혐의가 없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 안전과 자유를 침해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삶이 고통 속에서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정익호는 그 교도소에서 조차도 타인의 생명과 자유를 너무나 쉽게 침해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 정익호의 삶은 교도소 밖에 있는 권력자들의 삶과 너무나 비슷하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영화적 장면이 어쩌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영화 장면 중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정익호 사무실에 놓여 있는 대형 태극기였다. 2017년 올해, 우리나라 상징인 이 태극기는, 태극기가 만들어진 이래로 가장 추락한 이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감독의 의도적 패러디라면 매우 성공한 장면이다.
한석규와 김래원의 메서드 연기(method acting)는 과연 일품이다. 하지만 극의 긴장도가 떨어지는 후반부가 되면 이들의 메서드 연기가 비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