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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02. 2023

고속도로를 달리며.

기원전 4세기 중반, 그리스령 식민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에우클레이데스(영어식-유클리드)라는 위대한 수학자가 있었다. 기원전 300년 경 그는 유클리드 원론을 저술하였는데 당시까지 그리스에서 진행되어 온(사실은 서양세계 전체) 수학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체계화한 수학의 고전으로, 평면 기하 6권, 수론數論 4권, 입체 기하 3권, 총 13권을 저술하였다.


특히 그가 원론에서 사용한 23개의 정의와 5개의 공준(공리와 공준은 엄연히 다르다.)은 이후 수학 연구의 중요한 기틀을 제공하였다. 


그 23개의 정의 중 “정의 1, 점은 쪼갤 수 없는 것이다.”는 먼 훗날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오늘 하루 종일 도로를 달렸다. 약 300Km 이상을 달리면서 유클리드 원론의 “정의 4, '직선'은 점들이 쭉 곧게 놓여 있는 선이다.”에 대한 생각과 또 다른 다소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보았다. 


“고속도로와 삶의 궤적은 유사하다.” 


1. 속도: 내가 출발한 지점과 도착한 지점을 연결하면 엄격하게 직선은 아니다. 하지만 미분적 개념으로 본다면 수 없는 직선(점)이 연결된 것을 지나왔다. 속도(速度, velocity, 또는 speed)는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가 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유클리드가 정의 4에서 이야기한 수많은 점들 사이의 순간적 움직임을 량으로 나타낸 것이 속도다.   


삶이든 고속도로든 과속은 위험하다. 동시에 지나친 저속도 위험하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보폭 혹은 리듬(Pace, 페이스)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일생 동안 변함없는 속도는 사실 불가능하지만 나이 들어 갈수록 삶의 페이스 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2. 중앙분리대: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나 삶에 있어 중앙분리대는 경계의 징표다. 오고 가는 반대의 상황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장치이자 도구다. 부수적으로 둘 다 치명적 사고의 예방을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고속도로에서 적당한 높이의 콘크리트 벽은 서로의 방향을 존중하고 개입하지 않을 것에 대한 엄중한 약속이다. 2차선의 국도에서 두 가닥의 실선 역시 마찬가지다.  


3. 방향: 모든 도로에는 반드시 방향이 있다. 고속도로 또한 마찬가지다. 남북이든 동서든 각 지점을 연결해 주는 최선의 길이 고속도로라고 볼 수 있다. 때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때로 강물 위 다리를 건너가지만 그 과정을 넘어서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듯이 삶에 있어서도 이것은 그대로 적용된다. 또한 고속도로에서는 후진이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후진을 한다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삶에 있어서도 후진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만약 삶에서 후진이 가능하다면 삶은 돌연 무의미해진다.


4. 톨게이트: 폐쇄 방식 고속도로에서는 반드시 진입과 진출을 하는 톨게이트가 있다. 국도든 다른 고속도로든 이 톨게이트를 거쳐야만 진입 또는 진출할 수 있다. (인터체인지 방식을 거치기도 한다.) 톨게이트가 새로운 길의 시작점 혹은 그 길의 종착점이 되듯이 우리 삶에는 죽음이라는 톨게이트가 있다. 한편으로 그곳이 다른 삶의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나’라는 존재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끝과 시작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된 것이며 그 끝없는 순환의 과정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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