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에 가까운 비가 연일 퍼붓는 바람에 민중의 삶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비가 많이 와서 생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늘 우리들의 느슨함과 무감각이 너무나 큰 결과로 나타남을 본다.
물은 본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가두고 길을 내서 본래 흐르는 방향을 왜곡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구획된 들판과 강, 댐과 제방은 예상 범위 내에서만 통제 가능하다. 하지만 조금만 그 범위를 넘어도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나 미약한 존재가 되고 만다.
노자도덕경 8장은 물이 가진 본래 모습을 보여준다.
上善若水. 水, 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상선약수. 수, 선리만물이불쟁 처중인지소악. 고기어도.)
가장 선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는 일이 없으며 남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하여 도에 가깝다.
도덕경 전체로 본다면 물 이야기는 곳곳에 등장한다. 특별히 구체적 물(주로 강, 바다로 비유되는)에 대한 이야기 32장(猶川谷之於江海), 66장(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78장(天下莫柔弱於水)이 있다. 즉 물의 集積형상에 대한 이야기로서 8장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8장은 노자가 생각하는 물 자체(속성)에 대한 기준점에 해당한다. 먼저 물이 선하다고 규정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노자가 생각한 물은 일단 겸손하다. 가장 낮은 곳에 제일 먼저 흘러가기 때문이다. 8장 속에 ‘惡’은 사실 ‘싫어한다’라고 새기기보다 ‘낮다’라고 풀이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낮은 곳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를 수밖에 없지만 8장에서 단순히 위치가 낮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低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의 제일 조건을 겸손이라고 노자는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물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듯이 막강한 힘으로 우리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물이 흐르는 대로 두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댐을 쌓아 물을 가두고 물길을 돌려 제방을 쌓고, 땅과 도로를 내기 위해 산을 깎아서 생긴 일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일이다. 수해를 입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거대한 자본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재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물은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말도 너무나 의미 심장해 보인다. 다툼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 즉 물은 어떤 상태의 물이라 하더라도 서로 만나는 순간 다툼 없이 함께 섞여 어우러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러한 물의 속성을 무시하고 물을 갈래 지우려 한다. 댐을 쌓아 물을 가두고 제방을 쌓아 물길을 의도적으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댐과 제방의 범위를 넘는 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물이 가진 다투지 않음을 방해하였으니 물이 가진 본성, 즉 다투지 않고 함께 흐르려는 힘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거대한 힘을 지금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물이 도에 가깝다는 말은 역설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도는 결코 인간 중심이 아니다. 만약 도가 인간 중심이었다면 인류역사에 그 많은 사람들이 도를 탐구했을 리 만무하다. 도는 노자 말씀처럼 도로 불리는 순간 도가 아니다.(도덕경 1장)
그러면 물이 곧 도인가? 노자는 부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깝다(幾-거의 … 그런 낌새 정도)라고만 표현했다. 물은 도에 거의 가까운 정도지만 그렇다고 도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도덕경과 노자의 도에 대한 태도다.
또 비가 많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이미 우리는 물을 이용하기 위해 물을 통제하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은 늘 인간의 한계 밖에 있다. 그동안 우리가, 그리고 내가 저질러 왔던 자연에 대한 불손하고 염치없는 생각을 깊이 반성하며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