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세바스찬의 순교

by 김준식
The Martyrdom of Saint Sebastian, linden wood, 153*107, 1516, Alte Pinakothek in Munich.


'장자'에게 순교하는 세바스찬의 그림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한 모든 것'을 매우 쓸모 없어하는 '장자'가 아닌가! 그림을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도를 위한 것이라고 위안을 하며......


1. 도를 위해


The Martyrdom of Saint Sebastian(성 세바스찬의 순교)


성 세바스찬(라틴어: Sebastianus 255(?)–288(?)은 초기 기독교 순교자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 황제의 기독교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세바스찬의 순교에 대한 내용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354년의 크로노그래프[1]에서 찾을 수 있다.



세바스찬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매우 신중하게 자신의 믿음을 숨겼지만 우연하게 발각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인 자신을 지키는 군인이었던 그가, 기독교 신앙인임이 밝혀지자 자신을 배반했다 비난하고 들판으로 끌고 가서 말뚝에 묶어 궁수들이 그에게 화살을 쏘라고 명령했다. 궁수들은 세바스찬의 몸이 화살로 가득 찰 때까지 그를 쏘고 나서 죽게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화살로는 그를 죽이지 못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시종장이었던 Castulus의 부인 Irene(아이린)이 세바스찬의 시체를 거두기 위해 찾아갔다가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집으로 데려와 다시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그 후 세바스찬은 자신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린 황제에게 다시 돌아가서 기독교인에 대한 잔인한 처벌에 대해 항의하고 멈출 것을 요구했다. 황제는 그가 살아 있음에 크게 놀라는 동시에, 기독교의 믿음을 버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회유하였으나 이를 세바스찬이 분명하게 거부하자 이제는 그를 곤봉으로 때려죽이고 그의 시신을 일반 하수구에 던지라고 명령하였다.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성인으로 시성 된 후 세바스찬의 이야기는 다시 윤색되어 온몸에 화살을 맞은 사실을 버리고 오로지 다섯 발의 화살만 맞은 것으로 바뀌는데, 이는 예수의 5개의 성흔(스티그마타)에 비유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 그림에서도 상체에는 다섯 개의 화살이 세바스찬의 몸이 꽂혀있다.



이 그림은 그린 Hans Holbein the Elder(1460~1524)는 지금은 독일 땅이지만 당시는 자유제후국 도시였던 독일 남부의 Augsburg(FC 아우크스부르크는 한 때 구자철의 소속되었던 구단이다.) 출신이다. 홀바인은 대대로 화가집안이었는데 이 그림을 그린 아버지 홀바인보다는 아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 대표작 "The Ambassadors")이 더 유명하다.



홀바인은 그의 형 지그문트와 함께 아우크스부르크 예술 길드에 데뷔하여 신성로마제국 막시밀리안 1세의 후원에 힘입어 당시로서는 선진문화였던 플랑드르 양식의 예술을 받아들였고 이를 발전시켰다. 뿐만 아니라 베니스와 브뤼셀의 예술적 영향도 수입하여 당시 독일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이 그림은 제단화(altarpiece)이다. 따라서 목판(linden wood)에 그려져 있어 500년이 지난 지금도 색상이 선명하다. 본래 3단 제단화(Triptych)로서 왼편에는 성모가 성체를 든 모습이 그려져 있고, 오른편에는 성수를 부어주는 성모와 함께 병자들이 그려져 있다.



제단화의 기능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종교적 신비감을 상승시키는 데 있다. 일반 대중들은 성경을 가질 수도 없고 또 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종교적 신념을 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제단화와 종교적 의례, 그리고 성직자의 설명, 종교 음악이 전부였다. 거대한 교회당 안에 촛불로만 된 희미한 조명과 가끔 들어오게 설계된 창으로 내리비치는 햇살, 거기에 자욱한 향불과 다양한 순교자의 그림이 설치된 제단, 울려 퍼지는 성스러운 종교 음악이 보통 사람들에게 주는 종교의 압도적 이미지는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상체에 화살 5개를 맞은 세바스찬의 표정은 삶과 죽음 가운데 있다. 세바스찬의 머리에 있는 Halo의 표현 방식은 이 그림이 아직은 중세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세바스찬 주위에 있는 궁수들은 로마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북부 아프리카(당시 모리타니아, 현재 알제리와 모로코 지역) 출신들인데 이 시기에 그들은 이미 로마의 정예병으로 편입된 상태였다. 당시 로마 정규군 병사의 대부분은 게르만족이거나 모리타니아인들이었다. 그 외 몇 명의 장로와 집행관들이 그려져 있는데 죽어가는 세바스찬을 비난하는 듯한 표정이다. 앉아있는 궁수의 석궁은 현대의 그것과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매우 발전된 모습이다. 물론 이 석궁은 홀바인이 살았던 15세기 기준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배경에 세바스찬이 다시 체포되어 곤봉에 맞아 죽는 그림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이시동도법은 이 시기의 아주 흔한 표현방법으로 하나의 그림으로 연속되는 시간성을 가지게 하는 방법이다.



2. 도는 어디에?


天下에서 실리적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모두가 자기가 닦고 있는 학문이 더 보탤 것이 없는 최고의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옛날의 이른바 道術(가장 근본이 되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말하자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다면 神人은 무엇을 말미암아 내려오며, 밝은 지혜는 무엇을 말미암아 나오는 것인가. 성인은 태어나는 까닭이 있고 최고의 자리는 이루어지는 까닭이 있으니 모두가 하나에 근원 한다.



道의 대종大宗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천인天人이라 하고, 道의 정수精髓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신인神人이라 하고, 도의 진수眞髓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지인至人이라 하고, 天을 道의 大宗으로 삼고 道의 體得을 자기의 근본으로 삼으며, 道를 문으로 삼아 출입하여 우주 만물의 변화 조짐을 미리 아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仁愛로 은혜를 베풀며, 정의로 조리를 세우며, 예를 행위의 기준으로 삼으며, 樂으로 조화를 이루어 따뜻하게 자애로운 사람을 군자라 한다.


「장자」 ‘천하’


[1]

로마의 삽화가였던 Furius Dionysius Filocalus가 발렌티누스라는 부유한 로마 기독교인을 위해 354년에 제작한 연대기 및 달력을 말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