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by 김준식
Landschaft mit gelbem kirchturm, Oil on canvas, 1920. Neue Pinakothek, Munich.


구체적 형상이 없는 그림을 본 '장자'는 순간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곧 '장자'는 '설결'과 '왕예'의 모호한 이야기를 떠 올렸을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쇼펜하우어)


1. 색채와 형상의 융합 - 표상의 세계



파울 클레(Ernst Paul Klee, 1879 ~ 1940)의 그림은 통용되고 있는 다양한 근대적 미술 유파(구상 혹은 추상을 포함하는)와 조금씩 관련이 있지만 특정 유파의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곤란할 만큼 그의 작품에서는 추상과 구상의 모든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 근처 작은 마을 뮌헨부흐제에 태어났으니 스위스 사람인데 예술 활동은 독일에서 주로 했기 때문에 때론 독일 작가로 오해 받기도 한다.



클레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입체와 점묘, 그리고 여러 가지 자유로운 드로잉을 실험했으며, 근대의 모든 미술 사조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실험했다. 이를테면 청기사파[i], 뮌헨 분리파[ii], 청색 4인조[iii], 바우하우스[iv] 등의 일련의 미술 모임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도 하였으며 초현실주의(쉬르레알리즘)[v]와도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 회원 가입 요청을 거절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했다.



클레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는 그의 아프리카 튀니지 여행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14년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화가였던 무아이예[vi], 그리고 나중에 ‘청기사파’의 창립멤버가 되는 동료 화가 마케[vii]와 함께 아프리카 튀니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클레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나는 화가다.”(Carola Giedion-Welcker , Paul Klee, Rowohlt, Reinbek. 1961, 17th edition 1995, 43쪽)이는 여행 중의 경험, 즉 아프리카의 북부 지중해와 맞닿은 튀니지의 강렬함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던가를 클레 자신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Landschaft mit gelbem kirchturm"(황색 교회 탑이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림에서 희미하게 교회의 모습과 풍경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가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Mystical-abstract(신비한 추상)라고 불리는 시기가 끝나갈 무렵 그린 이 그림은, 구체적 형상은 이제 그에게서 서서히 의미를 잃고 색채와 융합된 이미지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노란색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고 그 위에 큐비즘[viii]적 분할과 쉬르레알리즘적 단서인 ‘불안과 환상’의 레이어가 겹쳐져 있다.



풍경(Landschaft)의 이미지를 수평으로 가정한다는 전제하에서 클레는 그림 전체를 수평으로 다중 분할하고 있다. 그 수평적 다중 분할의 밋밋함, 혹은 반복과 무료함을 극복하기 위해 불규칙적인 수직적 분할을 시도하여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고는 있지만 화면 전체를 검은 실선으로 나눈 것은 그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큐비즘에 매우 경도되어 있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나무 형상과 오른쪽 부분의 동물 모양은 매우 불분명하지만 낙타의 모습이라고 추정해 본다면 아마도 이 그림은 그가 아프리카 어디쯤에서 보았을, 끝없이 펼쳐진 황금색 사막을 배경으로 한 사원과 첨탑, 오아시스와 낙타가 있는 풍경이었을지도 모른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내[ix]와 결혼했던 클레는 그의 회화에서 음악적 요소를 매우 잘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음악의 핵심 요소인 ‘리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그림에서도 색채를 이용한 강약의 리듬적 요소가 그림 전체에 스며있는데 이를테면 색조의 변화가 일정한 리듬처럼 변화하고 있다. 즉, 노란색 사이사이에 강렬한 색(보색, 또는 명암의 대비)을 배치하여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가벼운 리듬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2. 알 수 없는 세계 - 의지의 세계


齧缺(설결)[x]이 王倪(왕예)[xi]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모든 존재가 다 옳다고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선생께서는 선생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존재에 대해 앎이 없습니까?”

왕예가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시험 삼아 말해보겠다. 내가 이른바 안다고 하는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으며, 내가 이른바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님을 어찌 알겠는가?”


「장자」 ‘제물론’



[i]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는 독일 뮌헨의 Neue Künstlervereinigung München(Munich New Artist's Association)로 부터 탄생한 일군의 예술가 그룹을 말한다. 구성원들은 러시아계 이민자 즉, Wassily Kandinsky(칸딘스키), Alexej von Jawlensky(야블렌스키), Marianne von Werefkin(베르프킨)등과 독일 출신의 Franz Marc(마르크), August Macke(마케), Gabriele Münter(뮌터) 등이 있다. 1909년 칸딘스키에 의해 구성된 Munich New Artist's Association의 멤버 중 일부 회원들이 1911년부터 14년까지 청기사파로 활동하면서 두 번의 전시회와 한 번의 예술연감 청기사(1912)를 발간하였지만 그들의 활동은 현대미술의 선구자이자 길잡이 역할로 모자람이 없었다. 1911년 클레도 이 모임에 가입하게 된다.




[ii]

뮌헨 신 분리파: 분리파의 시작점은 아카데미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적 감흥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분리파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주류로부터 분리(라틴어 ‘secedo’에서 유래)하여 전시회를 가지고 다양한 예술활동을 하자는 것이었다. 최초의 분리파는 1892년 Franz von Stuck(스툭), Wilhelm Trubner(트뤼버너), Fritz von Uhde(우데)가 주도하는 뮌헨 분리파였다.




[iii]

청색 4인조: 1924년 야블렌스키, 칸딘스키, 클레, 파이닝거는 청기사파의 뒤를 이은 ‘청색 4인조(Blue Four)’를 만들었다.




[iv]

바우하우스: 정식 독일 명칭은 Staatliches Bauhaus




[v]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 또는 쉬르레알리슴(프랑스어: Surrealism)은 1920년대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진 문예·예술사조의 하나이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다다이즘의 예술 형식 파괴 운동을 수정, 발전시키고 비합리적인 잠재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하여 표현의 혁신을 꾀한 예술 운동이다.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하는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상상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신분석가 프로이트의 학설에서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서 지성을 초월한 꿈이나 무의식(unconscious, 잠재의식인 subconscious과 구별됨)의 세계를 해방하는 것으로서 초현실적인 미를 창조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뱅자맹 페레, 로베르 데스노스, 조르주 바타이유,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루이스 부뉴엘 등이 있다.




[vi]

Louis Moilliet(1880 – 1962) 스위스 출신의 화가이자 유리 공예 디자이너. 평생의 친구였던 클레,마케와 함께 튀니지 여행을 했으며 클레의 소개로 청기사파에 가입하기도 함. 그의 그림은 표현주의에 가까웠으며 오르피즘(프랑스 화가 들로네가 대표자인 입체파의 갈래)과도 연결되어 있음.




[vii]

August Macke (1887– 1914) 독일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독일 표현주의 그룹의 하나였던 청기사파의 리더. 독일 예술을 혁신하였으며 그로 인해 독일 예술의 영역이 아방가르드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됨.




[viii]

큐비즘: 20세기 초에 프랑스에 일어난 서양미술 표현 양식의 하나를 일컫는다. 입체주의라고도 한다. 큐비즘이라는 낱말이 처음 쓰여진 동기는 조르즈 브라크의 풍경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브라크는 프랑스의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 레스타크 (L'Estaque)에서 사생을 하면서 풍경화를 그렸으며 이 풍경화를 두고 비평가는 입체적 희한함 (bizarreries cubique) 이라고 풍자하였으며, 이 낱말에서 후에 브라크의 표현 양식을 본 딴 그림들 및 화가들의 경향을 큐비즘이라 부르게 되었다.




[ix]

클레의 아내는 피아니스트였던 Lily Stumpf(1876-1946)오서 클레보다 연상으로서 화가로서 유명해지기 전에 클레를 만났으며 이 시기에 이미 클레에게 음악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x]

설결: 『장자』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 〈天地〉편에는 許由(허유)의 스승이고 王倪(왕예)의 제자로 기록되어 있다.




[xi]

왕예: 역시 『장자』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이다. 〈天地〉편에는 齧缺(설결)의 스승이고 被衣(피의)의 제자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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