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니......
술 취한 실레니우스
술에 취한 듯 보이는 이 노인의 이름은 Silenus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먼저 디오니소스의 종자從者로 성질이 쾌활하고 사티로스[i]보다도 술을 더 좋아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사티로스(Satyr, Saturos)란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머리에 작은 뿔이 났으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역시 술의 신 디오니소스 숭배와 관련이 깊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정령이다. 장난이 심하고 주색酒色
을 밝히는 무리들로서 영어에서 ‘호색한’을 뜻하는 'Satyric'은 사티로스에서 파생된 낱말이다.
하지만 실레니우스는 사티로스보다는 현명하여 일상적인 지혜를 제공하는 자로도 등장하는데 BC 5세기경부터는 디오니소스의 추종자에서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로도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실레니우스가 예언 능력이 있고 음악에 좋아했기 때문에 그의 평가와 입지가 바뀐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볼 수 있다. 역시 이런 이유로 그를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모습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소크라테스의 의향은 어떨지 몹시 궁금하다. 이 그림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 흉상의 이미지와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림에 사티로스도 등장하는데 실레니우스 뒤편에 서 있는 염소 다리의 괴수로 표현되고 있다. 실레니우스가 잡고 있는 포도 줄기를 호랑이와 비슷한 동물이 물고 있다. 사실 유럽에는 호랑이가 없지만 17세기 루벤스 당시 이미 동방무역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인도호랑이(벵골호랑이)가 유럽에 선을 보이면서 17세기 그림에 이런 종류의 호랑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림 왼편 하단에 반쯤 엎드린 여인은 두 명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데 아이들의 발이 모두 염소의 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하듯 그림의 오른쪽에는 염소가 두 마리 그려져 있다. 이러한 반인반수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반인반수에 대한 모티브를 바탕으로 하는데 사실 반인반수의 신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신화에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중국의 여와女媧와 복희伏羲, 이집트의 스핑크스, 그리고 인도의 Naga(나가)[ii]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어쨌거나 실레니우스와 가까이하고 있는 인물들은 매우 특이한 존재들이다. Dionysos(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iii]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세멜레가 아이를 임신한 채 죽자 그의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성장하여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헤라의 저주로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바로 이 실레니우스 손에 의해 양육되는데 디오니소스가 술의 신인 이유와 실레니우스가 늘 술에 취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듯하다.
프리기아의 왕 마이더스는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실레니우스를 잘 보살펴 준 덕에 디오니소스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선물로 받는데 그 선물은 바로 무엇이든 손에 닿는 것은 황금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능력이 결코 축복이 아님을 마이더스는 알게 된다. 사랑하는 딸조차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저주의 능력을 없애기 위해 수소문 끝에 강에서 손을 씻으면 된다고 알려줘서 마이더스 왕이 그렇게 하자 정말로 능력이 제거되었다. 신화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마이더스가 손을 씻은 강은 현재 터키의 팍탈로스라는 강이라고도 하며, 덕분에 이 강은 지금까지도 사금으로 유명하다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의 상류 가정 출신이다. 그는 1577년, 법률가였던 부친 얀 루벤스(Jan Rubens)가 개신교 신앙에 대한 박해를 피해 이주했던 독일의 지겐(Siegen)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사망한 1587년에 안트베르펜으로 되돌아왔다. 이곳에서 루벤스는 형 필립과 함께 라틴어 학교에서 고전 교육을 받으며 가톨릭교도로 자랐다. 1600년에 그는 자신의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준 8년 간의 긴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다.
이탈리아 곳곳에 있는 르네상스의 유산을 직접 보고 연구한 결과, 위대한 대가들의 예술에 감동한 루벤스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이탈리아에서 곧 명성을 얻었다. 특히 그는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의 영향을 깊게 받았는데, 그의 그림 속의 ‘광선’에 대한 영감은 카라바조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 다음 해인 1609년 알베르토 대공의 궁정화가가 된다.
루벤스 특유의 굵고 튼튼하며 풍만한 인체 묘사와 그림의 가운데 실레니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원구도의 그림 형식, 지금도 강렬해 보이는 원색의 색상은 거장의 미적 감각과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루벤스는 당시 반 종교 개혁의 중심에서 그림이라는 수단으로 새로운 종교개혁의(개신교) 바람을 막아내는 수단으로 신화를 통해 과거의 영광을 복원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i] 사티로스: 영어 표기는 Satyr(사티르)이다. 대체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사용된다.
생긴 모습은 상체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하반신은 염소이다. 머리에는 뿔이 나있다. 일반 적으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염소 이미지는 목양의 신 판과 여러 차례 엮이면서 생긴 것이지, 오히려 초기의 묘사들을 보면 하반신은 말 다리 2개이고 뿔도 없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에서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이다, 나는 聖人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라고 서술한 바 있다. 대개 사티로스는 남성으로 표현되지만 여성으로도 표현된 경우도 있으며, 여성의 경우 Satyress(사티레스)라 불리는데 고대의 미술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후대 예술가들에 의해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ii] 여와와 복희, 스핑크스, 나가: 여와와 복희는 상체는 인간이고 몸은 용, 혹은 뱀으로 표현되는데 둘은 남매 지간이다. 스핑크스는 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으로 된 동물로서 이집트 왕권의 상징이었다. 나가는 인도에서 뱀, 코브라 등을 일컫는 말로써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으로 표현되는 죽음을 다스리는 신으로 불린다.
[iii] 세멜레: 세멜레는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딸로,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이를 배게 된다. 티오네라고도 부르며 원래는 인간이었으나 죽은 뒤로 아들 덕에 여신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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