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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2)

절망과 희망

by 김준식
Calumny of Apelles (1494) Sandro Botticelli 작 음모 배신 중상 모략 -이것이 정치일 것이다.

엄청난 패악을 저지른 대통령을 헌법으로 심판하고 새 시대를 맞이 할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다가온다. 그런데 이 선거 판에 미국이 핵 항모를 끌고 야료를 부리며 썩어 문드러진 구 세력이 훼방을 놓는다. 마음 약한 우리 민중들은 다시 혼란에 빠져드는 국면이다.


나는 고등학교 교사이므로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월과 다르기를 바란다. 구 시대의 정치적 적폐가 해소될 것 같지 않은 이 무겁고 둔중한 분위기가 참으로 안타깝다. 지난겨울 우리가 밝혔던 촛불은 이제 모두 사라지고 음험한 기회주의자들이 그 에너지를 이용하려 한다.


아래의 글은 1년 전 국회의원 선거일 전날 쓴 글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 달라질 것도 없다. 이 상황이 너무나 싫다. 참담한 마음으로 글을 곱씹어 본다.


벨기에의 문화사학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가 쓴 책 중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책 내용은 고대 아테네의 선거 이야기를 비롯해 선거의 역사를 살펴본 것이지만 나는 책 제목에 집중하고 싶다. 참 적절하고 타당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에서 20대 총선까지 이어져 오면서 그 어느 시절도 국민을 위한 선거는 단언컨대 없었다. 정치적 입장은 다양하다. 하지만 1948년 이후 약 68년 동안 이 땅의 선거 중 단 한번 만이라도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것은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이거나 아니면 미친 것이다.

사실 선거는 여럿 중에 하나를 고른다는 지극히 단순한 행위이다. 뽑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뽑는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고, 뽑히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또 그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이것이 민주적 정치행 위이라고 보는 것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즉, 우연이나 즉흥성, 인맥이나 친분, 지역과 학맥 등이 매우 밀접하게 작용하고 가장 큰 문제는 돈에 의해 이 모든 가치를 한꺼번에 깔아뭉갤 수 있는 것이 선거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한 민의의 반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가?

次善이라고 치자. 그나마 공정성이 보장된다면 차선이 될 수도 있다. ‘공정함’이란 ‘공평’(公平)하다는 말과 ‘올바름’(正)이라는 말의 두 가지 뜻이 포함된 말인데 기회의 균등과 동시에 엄격한 기준을 가진 제도적 장치가 담보된 선거라면 차선으로 볼 여지가 그나마 있다.

그런데 20대 총선은 어떠한가? 여당과 야당은 선거일을 연기해야 할 만큼 선거구 획정을 거의 마지막에야 했다. 공평하고 엄정한 기준으로 제도적 장치를 미리 준비했더라면 이런 일은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뿐인가? 각 정당의 이합집산은 말할 것도 없고, 공천의 잡음으로 탈당과 입당을 번복하면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으로 바뀌는 그야말로 유치원생보다 못한 치기 가득한 행동을 우리에게 참으로 잘 보여주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이번 총선을 다가오는 대선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모습이다. 대선을 노리는 몇몇 인사들은 총선을 통해 그동안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인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총선을 이용하려 한다.

정당정치의 기본은 정당의 정강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대 국민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부 정당은 이러한 정상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지역적 감정을 자극하는 행위를 통해 단번에 그 지역에서의 그 정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이 졸렬한 방법이 아직도 통하는(하기야 다른 나라에도 있기는 있다.) 이 나라의 민주적 시민의식은 참 유치하고 한심하다.

또 아니면 기존의 정당을 이용하여 패거리 정신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권력의 주변부에 있는 부나비 같은 존재들을 끌어 모아 하나의 세력으로 이용한 다음 정치적 효용이 다하면 여지없이 뭉개버리는 수단으로 총선을 이용하고 있으니 이것이 과연 민주적 절차이며 또 이것을 통해 민의를 반영한 인사들이 뽑힐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하는 말(공약)의 대부분은 5분만 생각해 보면 모두 거짓말이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보는 순간 위선으로 가득하다. 지금 거리에서 90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저 사람들은 당장 14일 아침이면 당선된 자의 거만한 자세로 돌변할 것이고, 낙선한 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얼굴을 표변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한 없이 비굴해진다.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온갖 감언이설을 쏟아낸다. 아마도 그들은 스스로 정치란 그런 것이 아니냐며 자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치란 선거란 분명 그런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차선인 선거에서 우리는 그래도 한 표를 행사하여 저 패악 무도한 무리들을 향해 작은 돌팔매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 무력한 돌팔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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