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통계 관련 공문
주말이 되면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천천히 복기해 본다. 여전히 답답한 부분이 많은 2023년 대한민국 교육, 그리고 내가 있는 학교와 교육과정과 겨우 겨우 유지되고 있는 관계들이 하나하나 떠 오른다.
연말이 되면서 학교로 오는 공문들 중 제일 많은 것은 연말 통계 요구다. 이른바 실적을 제출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학교 교육과정 운영계획에 적혀 있는 것들을 온전히 믿지 않는 관료적 행태다. 이미 오래 굳어진 관행이라 교육과정운영계획이나 지나간 공문을 찾아보고 별 말없이 빈칸을 채워 제출하기는 하지만 찜찜함은 어찌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실적을 요구하는 곳은 국가일 것이다. 즉 국가 행정조직 중 학교와 관련 있는 다양한 부서에서 이런 실적 통계자료를 요청할 것이고 도 교육청은 그것을 학교로 전파하여 다시 역순으로 자료가 전해질 것이다. 그 일에 교육청 장학사들이 매달린다고 생각해 보면 ‘장학’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나 역시 오래전 장학사로 복무하면서 이런 일을 했었다.
학교는 이미 학년 초에 그 해 교육과정운영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교육을 한다. 그러니 연말에 이런 일들은 거의 요식행위이거나 본질적으로는 무의미한 통계자료일 공산이 크다. 학교 교육과정에 따라 움직이는 내용을 연말에 다시 통계를 내서 제출하는 것이 지금의 행정조직 내의 절차인데 참으로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다. 이런 일을 위해서 각 부처(학교와 관련 있는)에서 공문을 생산하고 그 공문을 도 교육청에서 받아 또 공문을 생산하고 그것을 학교에서 다시 집계하여 역순으로 보내는 과정은 멀고도 지난하다. 전자정부라고 떠벌리지만 하고 있는 일은 19세기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다.
2. 연말 시혜 혹은 선심
연말, 또 하나의 공문들은 각종 포상과 각종 유공자에 대한 시혜施惠관련 공문들이다. 일 년 동안 열심히 과업을 수행한 공무원들에게 상찬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정행위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내 관광지(제주도)와 해외 견학이라는 이름아래 소수의 교사 및 행정직 공무원들이 위로(?) 혹은 포상(?)의 의미로 이루어지는 여행에 대한 의견이다. 물론 이름은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거창한 이름이다. 하지만 본질은 여행 혹은 관광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기회가 제공되는 공무원의 선발이 사실은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표면적으로는 완벽히 공정한 선발이지만 그 속에는 매우 심층적이고 암묵적인 불공정 사례가 있어 쉽사리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면이 있다.
이런 일들이 학교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다. 나보다 탁월한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아도 사람들은 가끔 자괴감에 빠진다. 하물며 자신보다 탁월하지도 않은데 자신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의욕이 꺾이게 된다. 연말 시상이나 포상 또는 유공 교원들의 시혜 역시 보통의 교사들에게 약간의 자괴감과 동시에 비교심리를 작동시킨다. 혹시 이것을 동기부여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동기부여가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과 끝이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과업이 주어졌을 때 사용하는 말이 동기부여다. 조건도 다르고 과업도 다르기 때문에 동기부여는 처음부터 적용되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시혜의 뒤에 따라붙는 말은 모호한 기준과 신뢰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업의 타당성과 현장에서 적용되는 효과일 것이다.
이런 시혜성 견학, 시찰은 학교 사회의 응집력을 떨어뜨리고 동시에 ‘차별’과 ‘판세’라는 기형적인 잔유물을 남기게 된다. 그러한 예산 운용은 너무나 오래되고 잘못된 우리 행정행위 중 하나이다.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그런 시혜가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될 리는 만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