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을 앞두고 2023년 학교, 그리고 교육을 생각함(1)
공동체는 무슨!
지난 6월 아직은 교장이었던 시절에 문제를 제기(https://brunch.co.kr/@brunchfzpe/1302)한 ‘전문적 학습 공동체’(이하 ‘전학공’)라는 용어 문제는 차치하고 다시 교사가 되어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전학공’의 모습은 안타깝고 한심하며 답답하다.
일반적으로 ‘Community’로 번역되는데 이 말은 라틴어 ’Communitas’에서 왔으며, 이 말은 ‘Communis’, ‘같이’, ‘모두에게 공유되는’에서 유래된 말이다. ‘Communis’는 라틴어 접두사 con-과 munis (봉사한다는 의미가 있다.)의 합성어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공동체 중에서도 ‘학습 공동체’인데 ‘학습 공동체’에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1986년 'McMillan and Chavis'가 발표한 논문 『Sense of community: A definition and theory.』에 따르면 학습공동체를 다음의 네 가지 요소를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소속감, 영향력, 요구충족, 사건의 공유와 정서적 연결의 네 가지인데 각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소속감은 학습공동체의 참여자들이 그 공동체에 충성심을 느끼고, 그룹으로 뭉쳐서 계속 일하고 타인을 돕고 싶은 마음을 말한다.(구성원의 내부 의지)
영향력이란 학습공동체의 참여자들이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사태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구성원의 정보 소통)
요구충족은 학습공동체는 참여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또는 도움을 청할 때, 그리고 자세한 정보를 원함으로써 특정한 필요 요구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학습공동체는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구성원의 유기적인 연결망)
사건의 공유와 정서적 연결은 말 그대로 학습공동체는 구성원 모두의 감정적인 경험이 포함된 특정한 주제 및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구성원 연결의 강도와 지속성)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가 이런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매우 비관적이다. 오히려 이 기준만으로 본다면 학습공동체의 와해에 가깝다. 이유는 매우 많지만 처음부터 천천히 되짚어 보면 핵심 이유는 학교가 아이들을 위한, 그리고 그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학습공동체의 기능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 양성의 현장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즉 대학과 기업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말단 기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에서 학습공동체의 명분이나 가치는 대단히 장식裝飾적이다.
국가기관들은 국민의 세금을 걷어 그 돈을 국가 발전을 위해 지출하는 기관이다. 즉 기업처럼 투자와 이익, 그리고 생산성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의 행복한 삶이라는 대의명분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국가 기관의 존립근거다. 그러한 투입 중에서도 가장 장기적이며 국민의 근본적인 삶에 대한 투입이 교육이다. 그 장기적인 투입(자)은 영영 이익을 내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이익 창출에 기대를 가지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로 교육은 ‘훈련’과 ‘생산성’, 그리고 ‘효율’이라는 거대한 프레임으로 빠져들었고 20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날로 천박해질수록 교육의 위기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그 사이 교육의 본질을 유지하려는 여러 교육운동(혁신)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그러한 노력이 날로 퇴색되고 있다.
교육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학교는 구성원(흔히 말하는 학교 구성원-학생, 교사, 학부모) 내부의 갈등으로 상처받고 있다. 2023년 한해 동안 일어난 구성원 내부의 갈등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런 척박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육부를 비롯한 각 도의 교육권력들은 미래를 위한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궁색한 자기변명으로 얼버무린 끝에 구성원 내부의 갈등은 오로지 법률에 의해서 겨우 유지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직 법률에 의해 조정되는 학교에서 ‘학습공동체’라는 말은 참 어이없다. 교육이라는 거대한 명분을 위해 국가는, 각 도의 교육권력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
'학습공동체'로의 진화를 가로막고 심지어 훼손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이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국가적 행사로 만들어 버리고, 그 시험에 12년 교육을 걸어야 하는 아이들의 창백한 얼굴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그 시험에 킬러문항을 냈는지 내지 않았는지는 90% 이상의 고등학교 아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아침저녁 종합 뉴스에 중요한 뉴스로 떠벌리는 저의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의 저의는 무엇인가? 정말 몇 %를 위한 교육이라는 것을 대 놓고 홍보하는 장면을 우리는 아무런 비판 없이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런 엉망진창의 분위기에서 학교 구성원, 특히 교사들에게 연말 '전학공' 관련 공문이 들이닥치고 교사들은 관행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공동체’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공동체’ 일 수 없다. 심지어 학교장들의 성과급에 '전학공' 모임이 몇 회인지가 성과 지표가 되는 현실에서 그것을 ‘공동체’ 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수많은 교육운동이 우리를 각성시켰고 그 정신이 지금도 유효한 2023년 대한민국 학교에서, 최소한 위에서 말한 '교육공동체'의 기본적인 4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학교를 나는 꿈 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인 나는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눈을 부릅뜨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내가 해 낼 수 있는 일부터 하나 둘 이루는 2024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