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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Dec 29. 2023

종업식 풍경

종업식 풍경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와 만 4개월을 보냈다. 감회가 남다르다. 오늘 우리 학교는 일방적인 종업식 대신 학기 말 워크숍 형식으로 여러 선생님들의 생각을 듣는 시간은 매우 귀한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1.     완고함 혹은 자유로움


교과 교실 체제를 운용하기에는 현재 고등학교 건물이나 상황이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국가 교육의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으니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과 교실제는 유지되고 있다. 우리 학교는 교과 교실제를 위한 몇 가지 시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교실 맞은편에 아이들의 모임 공간(라운지)이 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 공간은, 아이들이 수업 시간 후에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에는 책상이나 의자가 없으니 아이들이 자주 누워있다. 문제는 누워서 있는 광경을 보는 교사의 시선이다. 사실 그리 좋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주 눕게 되고 간혹 수업에 늦거나 어떤 경우에는 잠을 자다가 수업을 빼먹기도 한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상식으로는 학교에서 번듯이 누워 있다거나 심지어 잠을 자서 수업에 빠지는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해석하고 결정하는데 각 학년마다 입장이 달라 운용 방식도 다르다. 2층 1학년과 3층 2학년은 별 다른 제한 없이 아이들이 사용한다. 하지만 4층 3학년은 이 공간을 아예 폐쇄해 버렸다. 그 이야기가 오늘 워크숍에서 나왔는데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차이에서 오는 운영 방식의 차이다. 각 교사들마다 그리고 교장, 교감마다 가치관과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그 다양한 기준이 교육이라는 대 전제 앞에서 비슷하게 작동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완고하거나 혹은 자유롭다. 


2.     애매한 권력과 연결망


학교 사회에 있을 수 있는 권력이래야 겨우 한 줌도 되지 않지만 때로 그 권력에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일반적으로 교장이 가진 학교 운영의 몇몇 권리는 권력으로 인식되어 여러 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 내부의 권력이 지배 복종의 구조여서는 곤란하다. 부조리한 승진 구조가 유지됨으로써 교장이 가진 역할이 권력으로 인지되는 상황과 그 권력의 부정적 영향 탓에 일부 교사들은 권력구조로 인식되는 학교 내부 연결망에서 자발적 단절을 선택하기도 한다.


학교 내부 연결망은 학교라는 조직이 운영되는데 매우 유용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결절점(연결망 내부의 속도를 떨어뜨리는)이 생성되게 되는데 이것은 때때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그 결절점을 이용하여 전체 연결망을 장악하거나 정보의 소통을 제어하는 등의 사례는 학교 연결망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교장 역시 학교 연결망 속에 있으므로 그의 권력이 연결망의 유통 속도를 높이고 건강하게 하는 방향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특정한 결절점에 의존하여 연결망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장의 역할은 학교 내부 연결망에서 정보가 멈추거나 혹은 속도가 느려지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데 있다. 


애매한 권력은 늘 연결망의 긴장도를 느슨하게 하고 동시에 소수의 노드(Node)들을 연결망에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3.     存在와 不存在 


교사로 돌아온 후 처음 1달 동안 나에게 가장 애매한 부분은 학교 내부 공간에서 나의 위치였다. 나는 교사가 분명한데 다른 교사들은 나의 그림자(예를 들어 교장을 거친, 장학사를 거친 등의 현재 존재하지 않는)에 더 관심을 둔다. 이유는 뻔하다. 약간의 평가 본능과 약간의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교사로 돌아왔다. 이미 교장도 아니고 장학사도 아닌 평범한 교사이고 싶었다. 존재하는 나를 보는 것보다 부존재의 내 그림자에 더 눈길이 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보이는 나는, 존재와 부존재가 혼재되어 보인다는 것을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다행히 4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들의 시선에서 존재하는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 워크숍 뒤에 점심을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말들의 뒤편에 도사리고 있는 뉘앙스는 여전히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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