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꿈과 시간의 重層構造

by 김준식
IMG_0516.JPG 아기고래의 첫 여행, 조은주, 90.9 x 72.7. 본인 소장. 2023


꿈과 시간의 중층구조重層構造


꿈은 예술의 원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꿈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보편적으로 인용되는 꿈의 정의로 본다면 꿈은 예술의 토양이라 할 만하다.


꿈의 반대편에 엄정한 현실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그렇게 수용되며, 역시 엄정한 현실이 완전히 과학적 상황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역시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가정한다면 분명 예술은 비 현실적이며 비 과학적인 토대, 처음으로 돌아가서(귀납적으로) 역시 꿈이 필요해진다.


1. 시간과 대비對比


작품은 색채를 기준으로 또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극단적으로 구획되어 있다. 녹색의 바탕과 대비시키기 위해 작가가 사용한 색은 짙은 자홍(마젠타)이다. (화면 전체 중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자홍을 바탕으로 하여 작가는 달을 표현했다. 화면 모서리 쪽에 배치한 달은 상현과 보름, 그리고 하현을 동시에 묘사하여 작가 스스로 작품 속에서 시간의 경과를 강조하려는 듯하다. 평면 구조, 혹은 고정 장면 속에서 시간성의 표현은 오직 화면 속에 묘사되는 객체로만 가능한 것을 작가는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


사실 시간성은 이 작품 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이기는 한다. 새끼 고래와 어미 고래의 등장으로부터 화면에서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두 개체의 움직임을 관객들이 상상해 낼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단서가 시간성인데 그 느리게 인식되어야 할 시간성을 달의 변화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달은 단순한 회색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자홍의 배경으로 하다 보니 보색대비 효과로 회색이 짙어지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밑으로 짙은 녹색이 화면을 분할하여 관람자들을 약간 당황하게 한다.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만 본다면 이 작품은 대단히 과감한 경향이 있는데 마치 독일 표현주의 작가 마르크(프란츠 마르크, 1880-1916)의 채색을 보는 듯하다. 특히 마르크가 자주 사용했던 강렬한 채색의 대비는 관람자에게 신선한 자극이거나 혹은 미묘한 갈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갈등이라 표현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작가의 뜻을 더 강조하여 채색이나 묘사가 전체적 조화보다는 앞선다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동양미학에서 자주 쓰는 의재필선意在筆先의 경지에서 약간의 교집합을 찾을 수 있다.


2. 고래 그리고 꿈


작품에 등장하는 고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흰 수염 고래에 가깝다. 고래의 종류가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허먼 멜빌(1819~1891)의 ‘백경(Moby-Dick, 1851)’에 등장하는 거대한 향유고래나 무섭게 생긴 혹등고래, 범고래, 또는 귀여운 돌고래가 이 작품의 소재로 등장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현존하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큰 개체인 흰 수염 고래가 주는 느낌은 그 압도적인 크기에도 불구하고 매우 우아하고 유연하며 동시에 친근하다. 그러한 흰 수염 고래의 이미지에 중첩적으로 새끼 고래를 어울리게 함으로써 작가는 관람자로 하여금 고래의 움직임을 더 부드럽고 우아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 이유는 새끼고래의 이미지를 한 겹 더 덧씌워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미와 새끼 고래의 등장은 전체적인 흰 수염 고래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움직임과 함께 자연계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모성의 이미지까지 그 위에 다시 겹쳐진다. 당연히 그 위에 달의 변화가 주는 시간성(매우 느린)의 레이어까지 겹쳐지면서 좀 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로 관람자에게 다가온다.


바다 속이라는 상상을 가정하고 배경의 짙은 초록을 본다면, 바닷속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초의 움직임이 짙은 녹색 위에 흰색의 터치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고래가 등장한다고 반드시 바닷속을 상상할 필요는 없다. 앞부분에서 밝혔듯이 이 작품이 어차피 꿈이라는 시퀀스를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짙은 초록은 5월의 어느 보리밭일 수도 있고, 아니면 미지의 초원, 짙은 풍경일 수도 있으며, 그도 아니면 녹색이 한없이 짙어지는 9월의 어느 날 농촌 풍경 일 수도 있다. 그 위에 고래 모자가 유유히 지나가는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 작가의 꿈이었을 것이다.


3. 수초의 이미지


작가의 고민을 느껴지는 부분이다. 관람자에게 바다 속임을 설득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겠으나 부조화의 느낌도 없지는 않다. 차라리 관람자의 상상을 믿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장치는 예술이 가지는 의외성(unexpectedness)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최근의 팝 아트나 키치(Kitsch)에서 간혹 사용하는 의외성은, 작품을 보는 관람자가 예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불쑥 나타나는 의문점 같은 것인데 오히려 밋밋한 화면을 새롭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한다.


단지 흰 선으로 표현된 수초의 이미지가 관람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수용될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작가 스스로 오랜 시간 고민하였을 것이고 그 고민이 이런 이미지로 표현되었다면 이것 또한 하나의 레이어로 수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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