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귀환(Rückkehr von der Jagd)과 명왕의 다스림
1. 『장자』에 등장하는 ‘명왕’
양자거陽子居가 노담老耼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양자거는 양주楊朱라는 학설이 통설이다. 양주는 중국 전국 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다. 자字가 자거子居이고 위衛나라 사람이다. 개인주의 사상인 위아설(자애설)을 주장하였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는데, 아주 민첩하고 굳세며, 만물을 잘 꿰뚫고 만사를 분명히 알며, 도를 배우는 데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명왕明王(응제왕 편에서 도를 체득한 사람으로 비유됨. 응제왕에 등장하는 비슷한 인물로 태씨泰氏, 성인聖人, 천근天根, 명왕明王, 지인至人이 모두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이런 사람은 성인과 비교하면 잡일이나 담당하며 기술에 얽매이는 자들인지라 몸을 수고롭게 하고 마음을 졸일 뿐이다.
게다가 호랑이와 표범의 아름다운 무늬는 사냥꾼을 불러들이고, 원숭이의 민첩함과 살쾡이를 잡는 개는 우리를 불러오는 법이니 이 같은 사람이 명왕明王에 견줄 수 있겠는가.”
양자거가 깜짝 놀라 얼굴빛을 고치고 말했다.
“감히 명왕의 다스림에 대해 여쭙습니다.”
노담이 대답했다.
“명왕의 다스림은 공功이 천하를 뒤덮어도 자기가 한 일로 여기지 않고, 교화敎化가 만물에 베풀어져도 백성들이 느끼지 못하며, 베풂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이름을 일컫지 않으며,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뻐하게 하여, 헤아릴 수 없는 초월적인 경지에 서서 아무것도 없는 근원의 세계에 노니는 것이다.”
『장자』 응제왕
2. 권력만을 탐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핍박받는 민중들
브뤼헐(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 Pieter Brueghel de Oude, 1527~1569)의 ‘사냥꾼의 귀환’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베르네(Carle Vernet)의 ‘사냥꾼의 귀환’(독 : Ruckkehr von der jagd, 불 : De retour de la chasse)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못된 정치와 권력만을 탐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있었던 나라에 살았던 민중들의 삶은 언제나 곤고困苦했다. 18세기말, 대혁명으로 절대왕정은 무너졌지만 혁명의 주체 세력은 ‘부르주아지’였고 그들은 혁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래의 귀족처럼 여전히 힘없는 민중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세력다툼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나폴레옹이라는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쥐었고 마침내 황제까지 오르는 그야말로 혼란과 무질서의 시대가 이 그림의 시대적 배경이다.
어디에선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전의 왕족, 혹은 귀족(쿠데타로 귀족이 된)의 마차가 마을 가운데를 지나간다. 퇴락한 마을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사냥꾼의 무리들은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있다. 6마리의 말이 마차를 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아마도 왕족)의 마차일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자동차의 4 기통이니 6 기통이니 하는 분류가 마차의 말 숫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웃프게 한다. 마차 위에 붉은 옷을 입고 앉아있는 호위병들로 보아 나폴레옹의 추종세력이거나 아니면 그와 유사한 권력을 지닌 인물이 마차에 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면을 멀리서 바라보듯 그림을 그린 이 사람은 프랑스 화가 Carle Vernet(1758~1836)이다. 베르네는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출신의 화가이다. 당시 유명한 풍경(속) 화가였던 아버지 Claude Joseph Vernet 로부터 일찍부터 그림을 배우게 된다. 이탈리아 여행 후 베르네는 당시의 전통적인 풍속화로부터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데 바로 여러 사람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그림으로서 ‘Triumph of Aemilius Paulus’의 장면이다. 이 그림은 로마시대에 마케도니아와 전쟁에서 승리한 에밀리우스 파울루스 장군의 개선을 축하하는 행렬의 그림으로 가로 4m 38cm이며 세로 130 cm 되는 대형 그림이다. 기원전 168년의 역사적 장면이 베르네는 특유의 역동적인 느낌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현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네 가운데 평화롭게 놀던 거위 떼는 혼비백산하고 개는 이리저리 뛰고 있는 가운데 이층에 있던 아낙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마차 옆에는 걸인이 모자를 들고 구걸을 하고 지나가던 행인은 멀찌감치 피해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나폴레옹 1세가 연합군에 의해 퇴위되고 나폴레옹의 하나뿐인 아들(나폴레옹 2세)은 멀리 오스트리아에서 있던 혼란의 시기, 혁명의 짙은 그늘은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트렸지만 여전히 권력의 주변부에 서 그들을 추종하던 비겁한 귀족들과 이미 혁명의 정신을 잊은 썩어빠진 정신의 군인들이 사냥을 하고 어떤 마을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혁명의 결과로 등장했던 나폴레옹의 몰락은 프랑스의 근간을 흔들었고 그 후 이어지는 잦은 혁명의 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베르네의 누이는 대혁명 공간에서 기요틴(단두대)에 의해 처형되었는데 이 충격으로 베르네는 한 동안 그림을 접었으나 French Directory(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성립된 정부) 시절 다시 그림을 시작하면서 그림의 스타일이 더욱 빠르고 순간적인 장면의 포착에 집중하게 된다. 이를테면 움직이는 말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거위가 혼비백산하는 순간을 그림으로 옮김으로써 그림 자체에서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나 있는 길을 중심으로 하여 6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마치 타임라인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처럼 보인다. 살아있는 움직이는 듯 한 말 근육의 역동성에 부가되어 있는 시간성은 뒤쪽의 색채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랜 혁명과 내전으로 관리하지 못한 지붕 위에 돋아난 풀과 암울해 보이는 하늘은, 비록 권력에 도움으로 그림을 다시 시작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누이의 처형에서 비롯된 우울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화가의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