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道, 실체, 그림자
『장자』 ‘제물론’ 끝 부분에는 재미있는 그림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두 명(개)의 그림자가 대화하는 장면은 실체 없는 그림자들이 마치 실체인 것처럼 대화를 주고받는다. 짙은 그림자(‘경景’)에게 옅은 그림자(‘망량罔兩’)가 깐죽대며 말한다.
망량: “당신(景)은 왜 그리도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오.”
경: “무엇인가를 의지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 내가 의지하는 그 무엇도 또 다른 것에 의지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보오.”
그림자는 반드시 실체가 있어야 되는 것이므로 실체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만든 그 실체조차도 확실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경’은 이미 도에 경지에 이른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경’의 모호한 이야기에 깐죽대는 ‘망량’은 사실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망량’ 자신이 더 희미한 그림자이기 때문에 애당초 그런 말(당신(‘景’)은 왜 그리도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오.)을 할 처지도 되지 못하지만 그 말 자체도 매우 타당하지 못한 말이다.
세상은 매우 상대적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과 지식에 의해 평가되고 표현되고 있는 모든 것을 ‘장자’는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나아가 깨끗하게 부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새롭게 이야기하려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또 원인이 있으며 결국 궁극적 원인은 ‘도道’ 일 것이다’라고 ‘장자’는 추측하지만, 그 ‘도’의 구체적 작용과 내용은 ‘장자’ 자신도 또 우리 역시도 ‘망량’이나 ‘경’이 하는 말처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장자’는 인간들이 느낄 수 있는 무형無形의 물질조차도 실체가 있다고 상정하고, 그것은 의지적意志的인 행위를 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이며 우주의 발생, 생장, 소멸의 초보적 질료라고 생각하였다. 『장자』 ‘천지’에 이런 이야기가 장자의 그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즉 “형체를 가진 존재 중에서 무형무상無形無狀의 도道와 일체가 되어 다 함께 존속存續할 수 있는 존재는 전혀 없다.”(즉 도만 존재한다라는 이야기다.) 이 道와 함께 존속存續하는 존재存在란 道와 함께 영원한 생명生命을 누리는 자란 뜻이다.
그 무형의 실체는 유有를 예비하는 전 단계로서 무에서 유로 변화하는 이런 전환 과정이 바로 도道라는 것이다. 즉, 도를 자연이 가진 보편적 법칙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도와 자연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자연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세계를 부정한다. 이를테면 ‘장자’는 냉정하게 감정을 억제하고 보편적 법칙인 자연이라는 도를 상정하고 있다.
Eugene Fromentin이 묘사한 Chasse au faucon en Algérie - La curée(알제리의 매사냥) 1863
프랑스 대서양 연안 항구도시 La Rochelle에서 1820년 태어난 Eugène Fromentin (1820~1876)은 북 아프리카, 특히 알제리를 주요 배경으로 그린 풍경화가이자 미술 비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이다. 그는 법률 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어 풍경화가였던 Louis Cabat의 문하에서 몇 년 동안 그림을 배운다. 그러다가 그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되는 사건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북 아프리카에 있는 알제리 방문이었다.
1846년 친구 둘과 방문한 알제리는, 젊은 Fromentin에게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했고 그 뒤 여러 차례 알제리를 방문하면서 그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인류학자, 특히 민속학적 연구(Ethnological science) 방법에 업적을 남기게 된다.
그런가 하면 그는 예술 이론에도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네덜란드 미술, 특히 Peter Paul Rubens와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의 미술에 대한 비평서를 출간하기도 한다. 그는 이 저작에서 처음으로 예술 비평(Art critics)이라는 틀을 통해 루벤스와 렘브란트의 예술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그림, ‘채석장에서의 매사냥’은 Fromentin 이 두 번째 알제리를 방문한 뒤에 그려졌는데 동일한 장면의 매사냥 그림이 몇 편 있다. 황량한 사막의 풍경을 그린 수평적 그림(Arabes chassant le faucon ; 이 그림은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과는 달리 이 그림은 종적인 구도로서 덤불과 함께 멀리 채석장이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서 있는 두 마리의 말과 역시 멀리서 달려오는 말들의 묘사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여전히 매들은 분주하게 사냥을 하고 있고 먼저 사냥을 시작한 매가 사냥을 해 오자 시종들이 매로부터 사냥감을 분리하고 있다. 적갈색 말을 탄 노인은 아마도 족장인 듯하고 백마를 탄 시종은 또 다른 매를 날리려 하고 있다.
매사냥은 아시아에도 그 전통이 있다. 몽고의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매사냥 풍습이 있는데 몽고가 고려를 침략했을 때 고려 사람들이 매를 키우는 응방鷹坊을 만들어 매를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매사냥을 할 때에는 그림에서처럼 매가 사냥해 온 사냥감을 빨리 매로부터 뺏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매는 사냥 본성을 잃게 된다고 한다. 결핍이란 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결핍을 통해 매는 언제나 사냥본성을 유지하게 된다.
Fromentin에 의하면 “예술이란 보이는 세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가진 예술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 말인데 이는 Delacroix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Delacroix는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로서 그 뒤, 인상주의 화풍의 초석을 놓았는데 심원한 색채와 격정적인 구도의 사용을 통해 눈에 보이는 세계를 화가의 내부에서 재편하여 단지 눈에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회화적 세계를 표현하려 했다. 바로 이러한 예술적 경향을 Fromentin 은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 눈에 보이는 세계뿐만 아니라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로운 회화적 세계를 표현하려는 Fromentin으로부터 나는 『장자』의 두 그림자 즉 경과 망량 이야기를 떠 올렸다. 경이 가지는 경지에 오른 실체에 대한 생각과 단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전부로 아는 망량이 가진 생각을 고민해 본다. 이를테면 회화라는 작업의 대상물을 대하는 화가의 시선과 완성된 작업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실체 등이 ‘경’과 ‘망량’의 대화, 그리고 Fromentin의 생각과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