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rge adorant l'hostie, oil on canvas, 1854. Musée d'Orsay, Paris.
프랑스 미디피레네 주 타른에가론의 수도 몽타방(Montauban)에서 태어난 엥그르(Jean August Dominique Ingres, 1780~1867)는 프랑스 신고전주의(Néo-Classicisme)의 대표적 화가이다.
그는 역사화파의 전통, 이를테면 멀리는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에서 가깝게는 쟈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으며 이들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다.
여전히 중세회화의 느낌을 유지한 듯 보이는 이 그림은 성모 숭배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사실 성모숭배는 10세기 이전의 기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신앙형태였다.
하지만 11세기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복잡하고 다양한 종교전쟁이 13세기까지 2백 년 동안 유럽인들을 괴롭혔고 또 이어서 민족주의 전쟁(독립전쟁) 등의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었으며 14세기에는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면서 기독교적 신앙의 방법적 전환으로서 따뜻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성모신앙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 그림에서 중앙에 보이는 것은 성체(De l’hôte: The Host –본래 뜻은 희생)이다. 본래 예수의 육신을 뜻하는 빵의 형상이었으나 이 그림에서는 구슬처럼 둥근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성체 형상의 변화는 이교도에 대한 선교의 필요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변하게 된다.(십자가 형태도 있다.)
앵그르의 그림은 사진보다 정교하고 완벽한 형태를 추구한다. 그는 “붓의 흔적을 그림에서 완전하게 지워야만 진정한 회화이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매우 정교하고 완벽한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샘, La Source』와 『오달리스크, La Grande Odalisque』에서 알 수 있듯이 피부의 질감과 색채의 톤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보듯이 완벽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그가 이탈리아 유학시절 르네상스적 전통에 감명받은 바가 매우 큰데 특히 르네상스 회화의 거장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의 영향은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그림에 양편에 서 있는 아이는 아마도 천사일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가는 금선으로 처리된 Halo(광륜 혹은 후광)가 머리 뒤편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당연히 성모에게도 그려져 있는 이 후광은 중세 성화(聖畵)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근세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게 된다. 이 그림처럼 앵그르는 금색 선으로 표시하다가 곧 후광의 존재는 회화에서 사라지고 마는데 이는 곧 근대적 회화(낭만주의)가 시작되는 지점과 비슷하다.
앵그르와 대척점에 서 있는 화가는 다름 아닌 드라크르와(Eugène Delacroix, 1798~1863)였는데 드라크르와가 낭만적 회화를 일군 개척자라면 앵그르는 중세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예술적 경쟁은 프랑스라는 거시적 틀에서 본다면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들의 영향으로 그 뒤 프랑스 회화는 이탈리아의 틀에서 벗어나 유럽 회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앵그르의 고전에 대한 거의 집착에 가까운 작품을 보며 『장자』 ‘천도天道’의 이 장면을 떠올렸다.
제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윤편'이 당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있다가 물었다.
“전하께서 읽으시는 건 무슨 말(言)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지(聖人之言也)”
“성인은 지금 살아 계십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벌써 돌아가셨다네”
“그럼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이군요”
환공이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바퀴 만드는 목수 따위가 어찌 시비를 건단 말이냐. 설명을 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윤편이 대답했다.
“저의 일로 보건대 수레를 만들 때 너무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덜 깎지도 않는다는 일은 손짐작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수긍할 뿐 입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而應於心 口不能言)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 없고 제 자식 역시 제게서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그막인 70 나이에도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겁니다. 옛사람도 그 전해 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