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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r 26. 2024

아침의 인상

콩스탕 트루아용(Constant Troyon)이 묘사한

소떼를 몰고 일하러 가는 아침의 인상(Les Boeufs affant au labour; effect du matin) 1855


바르비종파 화가들 중 일군은 동물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화가들 중에서도 동물 묘사가 가장 뛰어난 화가가 콩스탕 트루아용(Constant Troyon, 1810~1865)이었다. 트루아용은 1810년 프랑스 국립 자기 제작소가 있는 파리 근교 셸부르에서 출생하였다. 1833년 살롱에서 데뷔하여 1847년의 네덜란드 여행에서 네덜란드 풍경화가였던 파울루스 포터(Paulus Potter, 1625~1654)에게 영감을 받는다. 


포터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동물화가로서 목초지牧草地에서 노는 가축들의 생태를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화가로서 유명하다. 특히 포터는 색채의 조화에 뛰어나 외광(Plain Air)의 효과를 살리는 것에 재능을 보여, 그의 작품 대부분은 밝고 환한 풍경 속에 있는 동물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바르비종 파의 이상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트루아용의 이 그림에서도 동트는 아침 햇살에 반사된 소들과 소가 내뿜는 입김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55년에 그려진 이 낭만적이며 동시에 사실적인 그림은 낭만파 회화의 종착역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바르비종 파(École de Barbizon)의 후반부쯤에 위치하는 그림이다. 코로(Jean-Baptiste Camille Corot) 도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 밀레(Jean-François Millet), 루소(Théodore Rousseau)로 대표되는 바르비종 파들은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이 속한 퐁텐블로 숲 주위의 소박한 농촌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묘사를 그들 회화의 주제와 철학으로 삼았다. 이 바르비종 파들은 뒤 이어 이어지는 르누아르와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파 회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는데, 그러한 경로 중에 트루아용도 속해 있었던 것이다.


화면 중앙을 지평선이 가르고 있다. 사실 이러한 화면의 이분법 구도는 약간은 위험하기까지 한 과감한 것이지만 바르비종 파들의 그림(밀레, 도비니)들에서는 자주 발견되는 기법이다. 퐁텐블로 주위의 풍광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옮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그들이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지평선을 그대로 그림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 떼들이 내뿜는 하얀 입김이 아침 햇살에 더욱 선명하고, 동시에 역광에서 묘사한 탓에 목동이나 소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이러한 표현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정치, 경제 상황과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당시는 민중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벅찬 현실이었고, 이런 이유로 미루어 볼 때 트루아용의 역광 묘사는 민중의 고통 어린 표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오르세 미술관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하는 가로 세로 4mⅩ2.6m의 거대한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이 그림의 제목처럼 트루아용이 표현하고자 했던 ‘아침의 인상’이 너무나 확연하게 다가옴을 알 수 있다.


트루아용의 그림을 보면서 『장자』 ‘마제馬蹄’(말발굽) 이야기를 떠 올린다. 


“至德의 시대에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悠悠自適했으며 눈매 또한 밝고 환했다. 그때는 산에는 지름길이나 굴이 없었고 못에는 배나 다리가 없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살면서 사는 고을을 함께했으며 禽獸들이 무리를 이루었고 초목이 마음껏 자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짐승들을 끈으로 묶어서 끌고 다니며 놀 수 있었고 새 둥지를 손으로 끌어당겨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덕의 시대에는 짐승들과 함께 살면서 무리 지어 만물과 나란히 살았으니 어찌 君子와 小人의 차별을 알았겠는가! 함께 無知하니 그 덕을 떠나지 않았으며, 함께 無欲하니 이를 일러 소박素樸이라 한다. 소박함을 지키면 사람의 본성이 유지된다. 성인이 억지로 노력하여 인을 행하고 발돋움하여 의를 행함에 이르러 천하가 비로소 의심하게 되었고, 질펀하게 음악을 연주하고 번거롭게 예를 시행함에 이르러 천하가 마침내 계급으로 나누어졌다.


무릇 자연 그대로의 통나무를 해치지 않고서 누가 희준犧樽 같은 제기를 만들 수 있으며, 백옥白玉을 훼손하지 않고서 누가 규장珪璋을 만들 수 있으며, 도덕을 버리지 않고서 어떻게 仁義를 채택할 수 있으며, 타고난 성정을 떠나지 않고서 어떻게 예악을 쓸 수 있으며, 五色을 어지럽히지 않고서 누가 문채를 만들 수 있으며, 五聲을 어지럽히지 않고 누가 六律에 맞출 수 있겠는가! 무릇 통나무를 해쳐서 그릇을 만든 것은 기술자들의 죄이고, 도덕을 훼손하여 인의를 만들어 낸 것은 성인의 과실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통나무 이야기는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도덕경15장에 돈혜敦兮, 기약박其若樸(통나무처럼 질박하다.)은 통나무를 비유하면서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 곧 도의 길임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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