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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y 18. 2024

노자도덕경 산책(53)

5월 18일


내가 초, 중, 고 시절을 보낸 곳은 경남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지역이다. 전북 장수와 마주하고 있고 산지 지형이라 해발고도도 꽤 높은 편이다. 내가 자랐던 동네는 어림잡아 해발 300m 정도이며 산들이 첩첩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이라 겨울은 몹시 춥고 여름은 해발고도에 비해 몹시 더웠다. 덕분에 사과 등 가을 과일이 단단하고 달아서 맛이 좋았다. 


뿐만 아니라 덕유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금호강 주변에 예부터 8 담潭 9정亭이 있어 선비들의 흔적이 많았는데, 지금은 강물 곳곳에 물 막이와 홍수 방지용 작은 댐들 탓에 潭은 거의 사라졌고 정자 역시 남아있는 것이 서너 곳 정도뿐이다. 그나마도 지금 있는 정자는 6.25 때 이런저런 이유로 불타버린 것을 그 후 겨우 재건한 것들이다. 


대한민국 농촌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중학교 입학 무렵이었던 70년대 초반만 해도 내가 살던 곳은 면 소재지 치고는 엄청난 인구를 자랑했고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물건들이 쏟아져 제법 흥청거릴 정도였다. 5일장이 끝나도 천막극장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농촌이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은 80년대를 넘기면서 흘러나왔고 그때부터 2000년대까지 쇠락의 속도는 예상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단적인 예로 내가 사는 면 소재지 주변의 작은 초등학교들이 8~90년대 거의 폐교를 했고 이제는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 하나만 달랑 남았다.(70년대 당시 내가 살았던 면 지역에 4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원인은 차고 넘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치다. 아니 정치하는 사람들, 정치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을 제정하는 국회와 그것을 집행하는 행정권력들이 지금의 농촌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들인데 다수의 책임이라 구체적 책임을 물을 길도 없으니 그저 난감함 뿐이다. 이를테면 누가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가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책들이 농촌을 멍들게 했다. 농촌이 망해가는 조짐은 이미 7~80년대에도 있었는데 정치인들은 그들의 욕망에 따라 그 신호를 무시했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한 농촌은 점점 가속화되어 이제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되고 말았다.


2600년 전 노자가 살았던 중국은 춘추시대였다. 사람과 정치 사이에 그나마 명분은 존재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노자의 도덕경은 정치 권력자들을 엄중히 꾸짖고 동시에 그들이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물론 당연히 듣지 않았기 때문에 시절은 전국 시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도덕경 제9 장 끝에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치)다.


2600년 전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나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노자의 이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노자는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도덕경 곳곳에서 하고 있다. 도덕경 2장에서는 “功成而不居也(공성이불거야)” 즉, 공을 이루어도 그 공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고 34장에서는 “功成不名有(공성불명유)”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름(명예)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77장에서는 “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성인은 행위하고도 (스스로를) 믿지 않으며 공을 이루면 거기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여 철저하게 스스로를 경계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서 권력을 가졌던 자들이 최소한이라도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고 그 권력을 사용하였더라면 지금 우리 농촌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들은 저들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국민이 맡긴 권력을 이용했고 그 권력을 이용하여 저들의 재산 축적을 위해 국토를 참절僭竊하였으니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나절 내가 살았던 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둘러보니 괜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현재 이 땅에서 농촌에 살거나 농촌에 그 연고가 유지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살아오면서 권력 한 줌 쥐지 못했던 보통의 사람들일 공산이 매우 크다. 


광주 항쟁 44주년이 되는 오늘, 여전히 국민으로부터 나온 신성한 권력을 사유화하여 이 땅을 아사리 판으로 만드는 자들과 우리는 한 하늘 아래에 있어야 한다. 도덕경 9장 노자의 말씀처럼 불편 부당한 권력과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 국민을 위하지 않는 권력들은 이제 원하는 만큼 이루어졌으니 그만 물러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아직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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