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xécution de lady Jane Grey en la tour de Londres, l'an’ (한 해 마지막 날 런던탑에서 처형당하는 레이디 제인 그레이) National Gallery in London, 1833.
Paul Delaroche (1797 – 1856)는 프랑스 출신의 역사화가이다. 사진기가 없던 시절 뭔가 기록으로 남겨야 할, 또는 기록할만한 장면을 그리는 화가, 요즘으로 치자면 기록 사진사 정도의 위치일 것이다.(의외로 상상의 그림이 더 많다.) 예술적인 것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알리는 것에 방점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하지만 때로 사실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경우도 우리는 자주 본다. Paul Delaroche는 프랑스의 유명한 귀족 가문 ‘De la Roche’의 일원으로 그의 집안 대부분은 모두 미술품의 수집과 거래, 또 화가로 이미 상당한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Delaroche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고 에꼴 드 보자르(국립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당시의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로 대표되는 고전주의와 앵그르(Jean Dominique Ingres, 1780∼1867)의 신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역사화에 입문하게 된다. 그의 스승인 유명한 초상화가이자 역사화가인 쟝 그로(Antoine Jean Gros, 1771∼1835)의 문하에서 역사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역사화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역사화'는 아름다움과 우아뿐만 아니라 성격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의지가 객관화하는 최고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역, 동서문화사, 2020. 290쪽)
‘쇼펜하우어’는 무엇 때문에 의지가 객관화하는 최고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을 역사화라고 이야기했을까? 그러면 ‘쇼펜하우어’가 생각한 의지는 무엇인가? 일단 그는 ‘의지’를 ‘힘’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힘’은 자연 속에 있는 모든 ‘힘’을 의미한다. 인과에 의해 지배되는 모든 것이 힘으로써 ‘꽃이 피는 것’, ‘바람이 부는 것’, ‘밤 낮이 바뀌는 것’, 그리고 ‘삶과 죽음’ 그 전체가 자연의 ‘힘’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에 의해 표상되는 것들을 직관을 통해 추론해 낸 것이 ‘의지’라는 생각 하였다.
Delaroche 가 그린 그림, ‘L'Exécution de lady Jane Grey en la tour de Londres, l'an’ (한 해 마지막 날 런던탑에서 처형당하는 레이디 제인 그레이)을 통해 쇼펜하우어가 말한 ‘힘’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의지’의 객관화, 그리고 그 최고의 단계가 역사화라는 것을 역으로 추론해 보자!
이 그림의 주인공은 흔히 ‘Lady Jane Dudley’로 알려진 ‘Lady Jane Grey’(1537 – 1554)이다. 흔히 9일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 비극의 주인공은 이렇게 런던탑 어딘가에서 머리가 잘려 죽을 당시의 나이가 겨우 16세였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피의 메리로 불리는 ‘Mary Tudor’, 혹은 ‘Mary I of England’와의 권력 투쟁에서 9일 만에 패배하면서 런던탑에 유폐되었다가 이 그림처럼 한 해 마지막 날, 도끼날에 어린 목숨을 잃고 만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직관의 대상이 되는 ‘표상’과 그 표상의 바탕이 되는 ‘힘’, 즉 ‘인과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을 인물을 통해 역순으로 추론해 보자.
인물 #1 - 도끼를 든 남자
먼저 도부수刀斧手(도끼를 든 남자)의 표정이다. 프란트 슈미트라는 사형집행인의 일기를 조엘 해링톤이 편철한 책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추론하자면 저 사람은 대대로 저 일을 했을 것이고 또 자신의 아들도 같은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화가였던 Delaroche는 매우 당연하지만 오로지 상상으로만 이 그림을 그렸다. 그 상상의 그림 속 사형집행인은 의외로 평범해 보인다.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 모자를 쓴 그는 잠시 뒤 피를 튀길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안쪽에 흰색 셔츠를 입었고(그것도 목장식이 있는) 어깨에는 신분을 표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견장이 있으며 붉은색 타이즈를 입었는데 일반적인 사형 집행인의 옷과는 사뭇 느낌이 달라 보인다. 끈으로 연결된 조끼와 긴 팔 상의는 사람 목을 쳐야 하는 사람의 옷이라고 보기에는 불편해 보인다. 오히려 어떤 의례를 위해 입은 옷처럼 보인다. 어쩌면 16세기 당시 사형집행 자체를 의례로 생각한다면 이런 복장도 이해될 만하다.
인물#2 - 사제
사제의 모습은 일견, 사형수(‘Lady Jane Grey’)를 위로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천천히 살펴보면 눈을 가린 사형수의 귀에 속삭이듯 사형수에게 숙여진 몸의 각도나 두 손의 위치로 볼 때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거나 설득하는 모양이다. 당시 사형장의 있는 사제의 임무나 처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곧 죽을 어린 소녀에 대한 어떤 동정이나 연민은 보이지 않고 그저 사제로써 통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3 - 두 명의 시녀
벽을 향해 선 시녀나 정신을 놓은 듯 보이는 시녀와 사제의 태도는 매우 대조적이다. 아마 두 시녀의 태도에서만 희미하게 사형장에서 느낄 수 있는 슬픔이 느껴진다. 화가 자신도 두 사람의 시녀를 통해 죽음과 상실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두 시녀가 없었다면 이 그림에서 슬픔은 없고 단지 사형집행 전의 약간의 시간이 전부였을 것이다.
인물#4 - 사형수
사형수 즉 ‘Lady Jane Grey’을 보자. 일단 안대를 채웠다. 배려인지 아니면 의례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복잡하게 얽힌 왕위 계승의 암투에서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여왕이 되었다가 9일 만에 실각하여 죽음을 맞이한 16세 소녀일 뿐이다. 네 명의 인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죽음을 가져올 자와 재촉하는 자, 그리고 슬퍼하는 자들이다. 네 명 모두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 ‘Lady Jane Grey’의 죽음을 다르게 수용할 것인데 공통적인 것은 ‘Lady Jane Grey’의 죽음을 곧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Lady Jane Grey’에게 어떤 변화도 줄 수 없는 존재들이다.
쇼펜하우어의 인과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을 네 명의 등장인물로 해석해 보자.
인물#1~3은 모두 객관화된 ‘힘’들이다. #1과 #2는 각각 직업적 인과관계로 묶여 있지만 #2는 그나마 인과관계에서 최소한의 여유를 가진다. #3의 행동들 역시 ‘힘’, 즉 주종관계라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그 인과관계는 슬픔이라는 표상으로 나타난다. 결국 이 장면에서 #1의 존재가 이 화면의 압도적 인과 관계의 핵심이다. 당연히 #4의 비극적 이미지가 #1에 의해 강화되는 구조이다.
그러나 이 화면의 가장 강력한 ‘힘’은 인물들이 아니라 이 장면의 원인이 되는 ‘권력’ 그리고 ‘투쟁’ 일 것이다. 즉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가 객관화하는 최고 단계’는 이 그림에서 죽음이지만 그 내부에는 ‘권력’이라는 강력한 또 하나의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유사 이래로 ‘권력’은 피를 바탕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에 권력의 탄생과 종말에는 끝없이 피가 요구된다. 이 장면에서 ‘Lady Jane Grey’가 입고 있는 흰 옷이 표상하는 것은 순수가 아니라 패배의 표상이며 더러운 권력에 반대되는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Delaroche는 이 장면을 상상으로 그리면서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인과관계를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극적으로 묘사된 사형당하기 직전의 짧은 순간을 나는 하루 종일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