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9일 출발하여 8월 8일에 돌아온 중앙 아사이 여행기를 쓴다. 여행기라기보다는 감상이 더 많으니 여행으로부터 자극받은 감상의 기록이라고 해두자.
사마르 칸트의 몽상(1)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는 오래된 도시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을 왔을 때, Marakanda(마라칸타)로 알려진 도시가 바로 사마르칸트다. 사실 기원전 8세기부터 이곳은 오아시스 도시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서기 3세기부터 8세기까지 돌궐 제국영역이었던 사마르칸트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소그드인에 의해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 도시의 이름 사마르 칸트는 돌 혹은 바위를 뜻하는 Asmar와 성채 혹은 도시를 의미하는 kand가 합쳐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음이 변하여 현재의 사마르칸트가 되었다.(다양한 학설이 있음)
8세기부터 우마야 왕조의 정복으로 이슬람화 된 사마르칸트는 14세기 티무르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많은 이슬람 모스크와 무덤이 곳곳에 건축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비극적인 ‘울루그 베그’ 왕을 만났다. ‘울루그 베그’ 왕은 티무르 제국의 4대 왕으로 2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비극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삶 때문이다. ‘울루그 베그’는 아들 ‘압둘 라티프’의 반란에 의해 왕위에서 폐해졌고 동시에 처형되고 만다. 즉 이슬람 원리주의자였던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를 죽인 아들 역시 여섯 달 후에 폐위되고 만다.
하지만 2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울루그 베그’는 당시로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는 문화인으로써 수학, 천문학, 역사학에 능통했고 학자와 예술가들을 우대하고 학문과 예술을 보호 장려하여 당시 사마르칸트를 이슬람 문예의 중심지로서 만든 장본인이다. 그로부터 출발한 천문학은 많은 서양의 천문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이를 테면 저 유명한 '티코 브라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브라헤'는 맨눈으로 700개 이상의 별자리를 관측하고 그 법칙을 수립한 현대 천문학의 출발점에 있는 인물이다.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풍모나 업적으로 보자면 우리 세종대왕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시대도 거의 흡사하다. '울루그 베그' 박물관에도 역시 우리의 세종대왕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세종이라 표시하지 않고 불쑥 이도(세종 대왕의 본명)로 표시하고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중국의 입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란 시호를 쓴 중국 황제가 있었기 때문이다.(명나라 11대 가정제, 청나라 4대 옹정제의 시호가 세종이다.) 씁쓸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의 세종대왕은 1397년 태어나셨고 '울루그 베그'는 1394년 생이다.
섭씨 40도를 육박하는(그나마 습기가 없어 견딜 만했다.) 사마르칸트에서 나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인 그들의 모스크들을 유람했다. 무늬 하나하나를 타일로 구워서 붙인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수반한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건축은 둥근 지붕(돔)과 미나레트(첨탑)로 구성되어 있지만 우리와 같은 지붕도 당연히 처마도 없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그들에게 아마도 빗물을 받아 낼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가 오지 않으니 도시 천체가 누렇게 보이기도 한다. 미세한 먼지 탓에 세월이 더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새벽마다 들려오는 아잔(예배 시간을 알리는 경전 읽는 소리)과 도시 곳곳에 보이는 첨탑과 둥근 지붕들이 여기가 사마르 칸트임을 알게 한다.
나는 이슬람을 잘 알지 못한다. 당연히 그들의 경전 꾸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꾸란이 운문체의 글이라는 것으로 미루어 해석이 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시는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그들을 과격하고 심지어 호전적이라고 하지만 이 뜨거운 곳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들의 의지일 뿐, 그들이 표방하듯이 평화의 종교경전인 꾸란 자체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로지 해석에서 오는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종교를 믿지 않고, 동시에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먼 이방의 나그네인 나는 모스크와 무덤을 순례하면서 종교가 가지는 죽음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을 본다. 공포와 기대, 그리고 희망과 불안이 혼재된 죽음, 그리고 그 종교의 권위 뒤에 숨은 권력과 권력에 의해 강요된 피의 대가로 지어진 이 기막힌 건축물들……
그리고 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울루그 베그'의 삶을 들으며 쓸데없는 불편한 몽상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