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Sep 23. 2024

노자 도덕경 산책 (61)

노자 도덕경 산책 (61)


날씨의 변화


날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천지조화는 늘 예측이 어렵다. 온도 변화에 따라 사람의 감정도 움직이니, 며칠 전까지 마음에 없던 일이 오늘은 문득 살갑게 느껴지고, 며칠 전까지 익숙했던 일이 오늘은 생소해졌다.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어쩌면 이런 일에 의해 인류 역사가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조차 하게 된다.


만물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벌어진 일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또 나타날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어디 날씨뿐일까? 세상에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으니 원인과 결과보다는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천지 조화가 사실은 우리의 객관을 가볍게 넘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객관이라 부르는 것도 사실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평소 우리는 잘 모르다가 어떤 일과 마주하면서 희미하게 깨닫지만 사실은 그렇게 알게 되는 일조차도 거의 미미하여 사는 동안 내내 편견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노자께서는 도덕경에 이렇게 뚜벅 말한다.


天地不仁(천지불인) 천지는 어질지 않다. (도덕경 5장 첫 부분)


어떤 사람은 ‘천지는 편애하지 않는다’로 번역하기도 한다. ‘어질지 않다’와 ‘편애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다를 뿐 비슷한 말이기는 하다. ‘편애하지 않는다’의 의미에는 개별 사물에 대한 호, 불호가 없다는 말이 내재되어 있다. 도덕경 전편에 걸쳐 천지는 영원하여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고 또 유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특정 대상을 위하지는 않을뿐더러 그 작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의 좁은 견해로 알 길이 없다. 다만 23장의 자연처럼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25장의 천지처럼 본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며 50장의 出生入死(단지 태어나고 역시 그저 죽을 뿐이다.)의 경지가 있을 뿐이다.


이즈음 기후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유한한 삶을 걱정한다. 우리 자손들의 삶을 걱정한다. 그 걱정과 염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걱정과 염려 속에 들어있는 미량의 유위有爲는 배격한다. 인류를 위한 지구일 수 없듯이 그 무엇을 위한 목적론적 사고체계를 거부한다. 문명의 바닥에 깔린 지극한 편애와 편견이 지금부터 2600년 전, 노자에게도 문제였던 모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