謝俛於盡沈靜簡潔之香*(사면어진침정간결지향)
고요하고 깨끗한 향이 다하니 고마움에 고개 숙이다.
蘭葉久不動 (난엽구부동) 난초 잎은 오래 움직이지 않아도,
妙香渗寂然 (묘향삼적연) 기묘한 향기는 고요히 스미네.
華孕期定限 (화잉기정한) 꽃눈부터 이미 정해진 시간이었지만,
俛凋萎美靈*(면조위미령) 시들어 아름다운 영혼에 고개 숙이네.
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아침. 주말 동안 아무도 없는 학년실에서 홀로 향기를 피우다가 이제는 쇠잔해진 난초 꽃(이번 2개의 꽃대는 지난 10월 4일 만개)을 보는 순간 문득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어졌다. 내 책상에서 나를 제외한 유일한 생명체인 난초가 나와 인연이 맺은 지난해 9월 이후, 엄혹한 겨울을 보내고 엄청난 더위가 있었던 올여름 초반부터 지금까지 연속으로 3개의 꽃대를 올려 이 지독한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게 했다. 마침내 자연의 위대한 법칙에 따라 스러지고 있는데, 이 아침, 두 말할 필요 없이 독립적이고 분명한 생명체인 난초에게 그동안의 放香에 대하여 깊은 고마움을 짧은 글로 써 본다.
* 沈靜簡潔(침정간결): 성인의 성품을 일컫는 말이나 고전에서는 주로 다른 사람의 품성을 이야기할 때 쓰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문자 그대로 沈靜은 ‘뜻을 깊이 머금어 모습이 단정하고 고요함’이며 簡潔은 문자 그대로 '어떤 사실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점만을 잘 정리함'이다. 위 글에 맞게 풀이하자면 '사태의 핵심만을 매우 정돈된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함.
* 『장자』 ‘지북유’에서 ‘장자’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한다. “天地 有大美而不言(천지 유대미이불언: 천지 자연은 커다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