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Ästhetik

스승의 날에 보는 두 개의 그림

by 김준식

1. 아득히 흐린 날 보는 범관范寬의 임류독좌도臨流獨坐圖


역시 북송의 하권何權이 그림 속에 쓴 화제 시 결구에 ‘부지신재화도간不知身在畵圖間’이라고 썼다. 현재 화가가 머물고 있는 공간이 화가가 그림 속에 묘사한 공간임을 모른다는 이야기인데, 이 말 속에는 그림 속 공간과 화가의 실재 공간이 동일함을 시인은 통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그 공간에 있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인의 존재는 그림이라는 매체와 실재 그 공간에 존재하는 화가가 공간 속에 중첩되어 있다. 거울 속에 또 다른 거울이 그 거울을 비추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그림 속의 공간은 시간과 합쳐지고 합쳐진 시공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이 가지는 힘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시간 개념은 기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온대 기후 지역이기 때문에 시간을 통상 사시四時(사계절)로 나눈다. 따라서 사시는 실재의 시간이자 절대의 시간 그 자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당사자와 시를 짓는 시인, 그리고 그것을 관조하는 우리는 시공을 넘는, 즉 사시의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Lofty_Mt.Lu_by_Shen_Zhou.jpg

2. 스승의 날과 심주(沈周, 1427년 ~ 1509년)의 여산고도廬山古圖(스승은 이렇게 숭모崇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41세의 심주가 스승 진관陳寬의 7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부귀영화를 지나가는 구름처럼 여기면서 은일과 비둔肥遯의 삶을 살았던 스승의 인품과 학식을 높고 웅장한 여산에 비유했다. 여산은 은일한 삶을 추구한 은사들이 각별히 좋아했던 산으로, 이백의 시뿐 아니라, 석도 등 유명 화가들의 훌륭한 그림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백의 망여산폭포의 그 여산이다. 중국 강서성에 있다. 이백의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폭포가 일품이다. 심주의 그림에도 폭포만 시원하다. 모든 것이 너무 밀집하여 서양화를 보는 듯 하지만 그래도 폭포만은 시원하게 표현했다.


심주는 오파吳派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다. 오파는 명나라 문화의 중심지인 소주蘇州를 중심으로 형성된 화파畵派로 소주의 옛 지명 오吳를 따라 오파라고 불렸다. 오파는 원말사대가의 화법을 바탕으로 고아한 문인화의 세계를 이룬다. 오파의 전통은 심주에게서 문징명文徵明과 진순陳淳, 육치陸治등이 계승하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반복적인 화풍을 고집하다 명말 쯤에는 희미해졌다.

keyword